아이브, 충분히 근거 있는 완성형 걸그룹의 자신감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23. 4. 21. 11: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성장형보다 완성형을 지향한다'는 아이브의 데뷔 선언은 자신들의 처음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국내 걸그룹들 중엔 드물게 "스웨디시한 북유럽 풍 무드"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아이브의 'LOVE DIVE'를 이전부터 편애해온 그는 클래식을 전공한, 스스로가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제공=스타십엔터테인먼트

'성장형보다 완성형을 지향한다'는 아이브의 데뷔 선언은 자신들의 처음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거기에는 MZ세대를 겨냥한 자기애와 주체성, 당당함이 있고 X세대를 노리는 'After LIKE'식 레트로 바이브도 있다. "다크 모던 팝"으로 정의된 'LOVE DIVE'의 무표정한 잿빛 서정미도 물론 그들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동어반복('I've IVE')의 언어유희로 제목을 단 첫 정규작에서 "다른 문을 열어"라는 가사로 곡의 문을 여는 'I AM'과 "섬찟"하게 왜곡된 신시사이저로 천천히 물들어가는 '섬찟 (Hypnosis)'은 그 모든 것의 증거들이다. 적어도 지금까진 아이브는 '성장형보다 완성형을 지향'하고 있다.

앨범은 첫 세 곡부터 '찢는'다. 먼저 팬 콘서트 프롬 퀸스(The Prom Queens)에서 공개한 'Blue Blood'의 완벽한 긴장감은 첫 풀렝스 앨범 발매를 앞둔 아이브가 가졌을 남모를 긴장감을 세련되게 토해낸다. "잊지 마 나는 다 가져야 돼 / 웃지 마 긴장해 다"라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으르렁'을 쓴 서지음의 솜씨다. 곡이 만들어놓은 캐릭터에 몰입해 그 캐릭터의 입으로 이야기하길 즐기는 그답게 노랫말은 일관되게 당당하고 몇몇 구간은 가슴 벅차다. 모 걸그룹이 추구하는 '광야'에 빗댈 만한 이 디스토피아적 규모감은 작사가를 "멜로디가 하는 이야기를 잡아내는 사람"이라 정의내리는 서지음의 창작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곡 송캠프 명단엔 "유동적이고 쉬운 프로듀싱"을 지향하는 웨일스 출신 프로듀서 닉 한(Nick Hahn)의 이름도 보이는데 리타 오라, 제인(Zayn), 켈리 클락슨 등과 작업한 그는 2022년을 대표하는 케이팝 곡 중 하나인 'LOVE DIVE'를 통해 첫 해외 히트를 맛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두 곡이 공유하는 '다크 모던 팝'적인 분위기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어지는 더블 타이틀 곡들. 사실 아이브의 신작은 작사가들의 용호상박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그 이름들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서지음에 이어 이번엔 김이나다. 곡이 좋아야 히트한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I AM'에서 예의 그 '스태프 마인드'로 아이브의 주체적 매력과 곡에 담긴 복고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셔플 리듬. "동요 같은 후크"와 "불필요하게 높은 고음"을 지적한 혹자가 그 위험 요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준 것은 다름아닌 프로덕션이라고 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기엔 라이언 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무대 의상 시안부터 무대의 구성, 노래 가이드를 모두 짜고 그 노래에 맞는 작사/작곡가, 연주자, 댄서 등을 섭외하는 일까지 도맡는 사람"을 진정한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주장 일부를 정확히 실천하며 아이브의 복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곡의 경우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 그는 'Blue Blood'와 '섬찟 (Hypnosis)'을 뺀 모든 곡들에서 맹활약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상승과 하강의 교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멤버들의 포부를 담은 'I AM'의 뮤직비디오는 그런 라이언 전의 전방위 관여를 이미지로 은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이언 전(과 그 친구들)은 또다른 타이틀 트랙 'Kitsch'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장을 남긴다. 블랙핑크 식 비트 드롭 반전을 연상시키면서도 은근히 그 반전을 넘어서고 있는 이 한 곡을 위해 라이언 전은 관련자들과 제작 회의 및 수정 작업을 수 십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제안한 곡 콘셉트는 아이브가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9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즉 90년대의 하이틴 이야기를 힙합 스타일 음악에 녹여보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지난해 프로듀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리슨업'에 함께 출연한 파테코(PATEKO)를 섭외해 얻어내려던 것이 "한국적 힙합 감성"인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라이언 전의 의도는 적중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그 적중은 유효한데 가령 90년대 '우리들의 천국' 같은 청춘드라마를 통해 유행한 야구점퍼나 90년대 아이들이 보물처럼 여기던 동그란 종이 딱지 속 별들을 묘사한 것에서 사람들은 어느새 아이브의 놓칠 수 없는 정체성인 '복고'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코러스 가사 '19살의 키치(nineteen's kitsch)'가 계속 '90년대의 키치(ninety's kitsch)'로 들리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제공=스타십엔터테인먼트

작사가들의 용호상박은 'Kitsch'까지도 이어진다. 세 번째 주자는 슈퍼주니어-M의 'Break Down'으로 데뷔한 이스란. 올해로 데뷔 11년차를 맞은 그는 에프엑스의 '4 Walls', 있지(ITZY)의 'Want It?', 샤이니의 '1 of 1', 레드벨벳의 'Kingdom Come' 등을 쓰며 이미 이 바닥에선 기준 이상의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데모곡을 들으며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상상하고, 인트로 악기 소리와 사운드 효과에 주로 영감을 얻는 그는 작사 전 그룹(가수)의 음악 가치관과 멤버들의 평소 말투까지 공부하며 "수학능력시험 준비하듯" 가사를 쓴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Kitsch'는 그런 그의 창작론에 정확히 기반하고 있다. 과연 들어간 노력은 흥행에 비례하는 것인지 'Kitsch'에선 이스란의 글에 아이디어를 더한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황현이다. 국내 걸그룹들 중엔 드물게 "스웨디시한 북유럽 풍 무드"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아이브의 'LOVE DIVE'를 이전부터 편애해온 그는 클래식을 전공한, 스스로가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샤이니의 '방백'이 그의 곡이고 가사까지 쓴 최초의 곡은 소녀시대의 '오빠나빠'였다. 이스란과 함께 2023년의 대표 케이팝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곡 가사를 매만진 그는 이 앨범의 뒤에 나오는 'NOT YOUR GIRL'과 '궁금해 (Next Page)'의 노랫말까지 쓰며 제법 비중있는 존재로 아이브를 지원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정확히는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가 여기까지라는 얘기다. 2019년 '보라색'이라는 싱글로 데뷔한 솔희(SOHLHEE)와 레이블(스타쉽엔터테인먼트) 메이트인 우주소녀의 엑시가 사랑을 앞에 둔 '밀당'의 감정을 주제로 함께 가사를 쓴 'Lips'부터 음악의 자신감은 눈에 띄게 위축된다. 'Royal' 때처럼 가을과 레이가 적극적으로 랩 메이킹에 참여하고 있고, "날 쏘아보며 버티는 날 서있는 말들" 같은 번뜩이는 가사를 써내는 안유진의 가능성('Heroine')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앨범의 중후반부는 그 앞의 오라(Aura)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서지음의 친자매이자 오마이걸의 '돌핀' 가사로 유명한 서정아가 노랫말을 쓴 '섬찟 (Hypnosis)'이 외롭게 뒷심을 발휘해주곤 있지만 '궁금해 (Next Page)'에서 시작해 'Cherish'와 'Shine With Me'에 이르는 길은 용두사미라는 오래된 사자성어를 기어이 곱씹게 하고 만다. 장원영이 가사를 쓴 미니멀 일렉트로닉 팝 'Mine'은 트랙 순서에서나 음악의 질에서 그런 작품의 중간을 외롭게 서성이고 있다.

펑키한 'NOT YOUR GIRL'을 빼놓을 수 없지만 확실히 너무 달달해 금방 질릴 만한 사탕 같은 트랙이다. 굳이 아이브가 아니어도 이미 많은 걸그룹들이 들려준 스타일이고 앞으로도 많은 걸그룹들이 건드릴 소스다. 어느 리뷰어가 "음향적 혁신을 수용하지 않은 탓에 음악적으론 즐겁지만 의미는 공허하다"고 지적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지, 이 작품이 일궈낸 부분적 성취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I've IVE'를 정주행한 그 리뷰어의 결론은 이랬다. "다양한 보컬 퍼포먼스와 프로듀싱의 조합은 성공적이다." 사실 이건 나도 동의하는 바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