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의 10배나 탄소흡수…‘양삼’을 심자 [전범선의 풀무질]

한겨레 2023. 4. 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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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인 양삼은 탄소흡수량이 상수리나무의 10배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탁월하다. 게다가 두 달이면 1m 높이까지 자라 4~10월 사이 3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 여기에 고기를 덜 먹고, 전기 사용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다. 생산부터 생활까지 총체적이고 분명한 계획이다.
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인 양삼은 탄소흡수량이 상수리나무의 10배다.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 제공

전범선의 풀무질

무기력하다. 기후생태위기는 심각해져만 가는데 나아지는 게 없다. 봄이건만 춘삼월 호시절은 옛말이고 황사와 미세먼지가 세상을 덮는다. 비건, 제로웨이스트 등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정치권의 쇄신을 기대하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은 내게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 정성헌(77) 이사장님을 만난 것이다. 새마을운동중앙회장(2018~2021)으로 있던 시절 생명살림국민운동을 이끌었던 분이다. 박정희의 관변단체였던 새마을운동중앙회를 기후생태위기 대응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탈바꿈시켰다. 1건, 2식, 3감이 골자였다. 유기농 태양광발전소를 짓고(1건), 나무와 양삼을 심고(2식), 고기·전기·쓰레기를 줄이는(3감) 운동이다. 200만명이 넘는 전국의 새마을운동 회원들이 생명살림을 위한 1·2·3 운동을 전개했다.

태양광 발전에 유기농업을 결합하면 청정에너지 생산과 토양 재생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 나무와 양삼(케나프·양마)은 탄소를 흡수한다. 특히 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인 양삼은 탄소흡수량이 상수리나무의 10배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탁월하다. 게다가 두달이면 1m 높이까지 자라 4~10월 사이 3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나무가 좋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에 고기를 덜 먹고, 전기 사용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다. 생산부터 생활까지 총체적이고 분명한 계획이다. 군사독재 시절 밀어붙이기식 근대화 운동의 선봉이었던 새마을운동이 기후생태위기 대응을 선도하다니 놀랍다. 역시 생명살림에는 좌우가 없다.

하지만 2021년 중앙회장이 교체되면서 운동도 멈췄다. 톱다운(하향) 방식의 한계다. 정부가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참된 국민운동은 국가가 아닌 국민이 주도해야 한다. 1·2·3 운동을 3·2·1 운동으로 뒤집어보자고 제안한다. 이미 비건, 제로웨이스트라는 이름으로 3감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나서서 2식을 하고 1건을 하자는 것이다. 보텀업(상향식)으로 하면 정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일제 치하 3·1운동에 견줄 만한 거국적 생명평화운동으로서 3·2·1 운동을 상상한다.

양삼 심기는 태극기를 흔드는 것만큼이나 구체적이면서 상징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불매 또는 불복종이라는 부정이 아니라 뭔가를 심는 긍정적 행위다. 말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노동이다. 기분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 푸르르게 자라나는 식물은 희망을 준다. 나아가서 공동체 리추얼(의식)이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개인들이 대지로 나와 자연과 연결을 회복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 혼자 겪는 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얻는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과도 비슷하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자 공동체 사기 진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

5월 초 강원도 인제에서 양삼을 심는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운영하는 달뜨는보금자리에서 한번, 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서 또 한번. 서울에서도 심고 싶다. 서울시 탄소배출량 1위인 서울대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내친김에 용산 미군기지에도 심으면 의미가 크겠다. 물론 산업용으로는 케나프보다 헴프가 쓸모가 많다. 경북 안동시에 이어 강원도가 최근 헴프(의료용 대마)를 미래 생명산업으로 장려하고 있다. 국민운동의 성격을 고려하면 더더욱 서양 삼보다는 조선 삼을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허가가 필요하다. 헴프는 대마(삼)이기 때문이다. 생명살림운동은 현실적으로 양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과연 양삼 심기가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단순한 행위가 전국으로 퍼졌을 때의 힘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것이 나라를 살릴 수 있을까? 금모으기가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촛불이 정권을 바꿀 수 있을까? 후대의 평가가 갈릴지는 모르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들에게는 이런 공동체 리추얼은 큰 의미가 있었다. 모두가 함께한다는 연대감,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후생태위기 속에서 희망을 꿈꾼다면 양삼을 심자.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혹시 아는가? 우리 다 같이 심다 보면 지구의 종말을 막아낼 수 있을지.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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