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러, 이번에 총 대신 외교 전쟁…러 입김 강한 중남미서 경쟁
러 외무, 베네수엘라·쿠바 방문…"美 제재 우회 돕겠다"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전쟁이 장기화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오랜 기간 비동맹·불간섭 원칙을 고수해온 중남미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외교전에 나서고 있다.
2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 의회에서 화상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립 입장을 취한 지도자들을 '포퓰리스트'라고 칭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젤린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고, 잔인한 러시아의 침략이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보지 못한 일부 지도자들이 있다"며 "불행히도 세상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친중·친러 행보를 이어가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등을 겨냥한 연설이다.
로이터통신도 "멕시코는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불간섭주의 원칙과 함께 인도적 차원의 지원만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특히 좌파 성향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해 온 것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특정 국가의 편에 서지 않아 왔다. 브라질은 여러 유엔 결의안에서 러시아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정권 교체 후 러시아의 침공에 비난을 삼갔고,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은 유엔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기권하거나 결석했다. 아르헨티나도 유엔 결의안에서 러시아에 반대표를 던지기는 했으나 무기 지원 요청은 거절했다.
그러나 최근 룰라 대통령이 중국·러시아와 스킨십을 확대해 나가며 브라질을 필두로 중남미 지역의 비동맹·불간섭 원칙에도 금이 가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가 종전의 대가로 크림반도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라질의 친중·친러 행보에 힘입어 러시아 외무장관도 중남미 순방길에 올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브라질,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니카라과, 쿠바를 방문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라브로프 장관의 방문을 환영하고 나섰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적용한 금융 및 석유 부문 제재를 우회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우리는 세계가 이러한 미국의 '규칙'에 따라 영구적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미국의 제재에 어려움을 겪는 쿠바를 이해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처럼 중남미 국가가 러시아와 손을 맞잡은 데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러시아의 침공 당시 중남미 경제는 이미 코로나19로부터 느리고 고통스러운 회복에 직면해 있었고, 그러던 중 전쟁이 발발했다"며 "중남미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략을 노골적으로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러시아와 무역 협력의 문을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쟁 발발 전 러시아-중남미 무역은 중남미 전체 무역량의 0.64%를 차지했지만, 전쟁 이후 석유 위주의 무역량이 폭증했다. 레피니티브(Refinitiv)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3월 중남미에 석유 정제품 300만 배럴을 수출했다. 이는 2021년 한 해 통틀어 130만 배럴을 수출한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규모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중남미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CSIS는 "중남미는 헬리콥터, 대포, 대공방어, 대전차 미사일과 같은 장비를 포함해 러시아 무기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 제공을 거부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전투 지속 능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앞서 중남미의 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멕시코·칠레·콜롬비아 3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거부한 바 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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