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척결’ 늪 빠진 구닥다리 보수 국민의힘
● 김기현 당대표 취임 1호 과제
● 체제 경쟁 끝난 지가 언젠데…
● 일종의 ‘역(逆)적폐청산’
● 자유한국당 시절의 교훈 잊다
● 참새 잡는 데 대포 쏘는 여당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의 종북(從北)은 진보진영에서 비롯된 용어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내 세력 다툼 과정에서 노동자·복지 등을 주요 화두로 삼는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가 반미·주사파 세력 확장 등을 꾀하는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을 비판하는 데 사용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갖는 영향력은 친북보다 강했다. 아무래도 '북한과 가깝다'는 것보다 '북한을 따른다'는 게 더 자극적이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진보진영에서 시작된 이 단어는 보수진영의 주요 무기가 됐다. 이를 두고 과거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당시 우리가 제기했던 핵심적인 문제는 종북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였는데 언론에 종북주의만 부각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보수정당이 종북 척결을 외치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동안 보수정당에서 이 단어가 실종됐던 것도 사실이다. 20대 대선이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을 거치며 종북 척결을 주요 의제로 삼는 세력이 지리멸렬한 덕분이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이준석 전 대표 등은 북한 문제에 강경한 발언을 내세우는 인물들이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안철수 의원의 '신영복 존경' 논란만 보더라도 이들은 "신영복을 조금 추켜세웠다고 해서 그가 빨갱이라는 건 보통 비약이 아니다"(김종인)라거나 "신영복 글씨체 쓰인 소주 마시면 종북이냐"(이준석)며 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당내 상황은 '이준석 사태'와 3·8 전당대회를 거치며 180도 바뀌었다. 사실상 당을 장악한 친윤계는 본격적으로 정체성과 노선을 뚜렷이 하고자 한다. 그 소재로 종북 척결은 과연 적절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북 세력 척결하자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다른 집단은 몰라도 2030 청년들은 분명 떠날 거라는 것이다.
홍준표와 장제원의 말
올해 들어서는 크고 작은 간첩 사건들이 보도됐다. 1월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광주 등지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3월에는 검찰이 제주·창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자주통일민중전위 관계자 4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의 혐의는 대체로 비슷하다. 요컨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 정부를 비난하거나 여론 분열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최근 대두되는 북한 이슈가 전통적인 지지층을 규합해 부족한 당내 기반을 채우려는 윤 대통령과 친윤계의 전략적 판단인지, 아니면 정말 체제 전복을 꾀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우국충정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요즘 불거진 사건들이 대체로 시민단체·노동조합과 연계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과 상당 부분 활동 영역이 겹친다. 이들이 무고하다는 게 아니다. 시민단체나 노조를 향한 청년들의 인식이 썩 좋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로서는 이들의 이적행위를 들춰내는 게 국가 안보도 지키고 상대방에게 정치적 타격도 줄 수 있는 일이 된다. 일종의 '역(逆)적폐청산'이다.
문제는 사정기관의 수사와 정치가 결합할 때다. 정치인들은 과욕에 도를 넘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확실하게 지켜져야 할 안보가 정치 영역으로 올라오면 시끄러운 정쟁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시절인 2018년, 우리은행 새해 달력에 들어간 한 초등학생의 '통일 나무' 그림을 두고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며 한탄한 홍준표 당시 대표의 신년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변인이던 장제원 의원도 "이제 학생들은 미술대회 수상을 위해 인공기를 그릴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런 주장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당연히, 홍 대표 스스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대패했다.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부여당은 벌써 자유한국당 시절의 교훈을 잊은 것 같다. 만일 종북특위 구성 같은 북한 이슈가 당내에서 재차 부상하기 시작하면 국민의힘은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마치 검찰개혁에 매몰돼 최근 세 번의 선거를 내리 내준 민주당처럼 말이다.
저자세 文도, 종북 척결 국힘도 싫다
종북 척결을 외치는 보수정당에 냉소를 보내는 2030세대는 북한에 우호적인 존재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청년들은 다짜고짜 북한 이슈를 꺼내는 자유한국당 유(類) 보수도 혐오하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죽창가를 부르면서도 정작 북한의 온갖 도발과 막말에는 찍소리하지 못하는 진보세력 또한 경멸한다.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2018년 12월 발간한 '통일외교안보 청년의식 실태조사' 용역보고서에는 그러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전국 4년제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8%가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불만이다. 또 전체의 64.8%는 주한미군이 증원되거나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감축·철수해야 한다는 답변은 33%에 그쳤다. 동시에 72.2%가 남북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71.6%가 남북 간 사회문화교류를 긍정적으로 봤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청년들의 태도는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틀에서 벗어나 상당히 복합적이다. 북한을 쳐부수어야 할 원수나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며 껴안아야 할 가족이 아닌 그저 인접국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와 여당의 북한에 대한 저자세는 청년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공간에서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2019년 광복절, '평화 경제'를 주장한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仰天大笑, 하늘을 보며 크게 웃는다)할 노릇"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 적이 있다. 이에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을 직접 지칭하지 않았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대내 매체에는 게재하지 않음으로써 일정 정도 수위를 조절한 것은 다행"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남의 나라가 자국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데도 찍소리 못하는 여당의 행태에 청년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동안 온라인에선 문 대통령을 두고 '삶은 소대가리'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1994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앞두고 열린 실무회담에서 북측 대표였던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으로부터 "전쟁 나면 서울은 불바다 된다"라는 발언이 나오자 시민들 사이에선 라면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강도 높은 대남 비난 성명을 내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힘의 차이가 더욱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분석하는 '2023 GFP' 세계 군사력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6위, 북한은 34위를 기록했다. K-방산업체들은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과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종종 희화화되기도 한다. 북한이 비난하면 제대로 된 인물·정책이라는 의미의 '북증서(북한 인증서)'라는 신조어는 그러한 인식을 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청년들의 안보관이 안이하다'거나 '핵 위협은?'이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요즘 청년 중에 안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력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선진국 일원인 MZ세대에게 北이란
‘국민일보'가 2021년 6월 지령 1만 호를 맞아 MZ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 과반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로 중국을 꼽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세 명 중 두 명이 남 내지는 이웃 국가 정도로 여겼다. 한 마디로 "중국은 싫고 북한은 안중에 없다"는 소리다. 이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도 공산주의 체제나 6·25전쟁 등을 떠올리면 안 된다. 청년들은 한복·김치 등에 대한 역사·문화 왜곡이나 서해 불법조업·미세먼지처럼 정치, 이념적 이유가 아닌 일상에 직면한 문제들 때문에 중국에 반감을 갖는다.북한·중국이나 미국에 대한 태도는 과거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주요한 축 중 하나였다. 냉전과 개발독재가 낳은 시대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기준은 청년 세대에게 무의미하다. 1990년대 전후로 태어난 MZ세대는 대체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에게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일제강점기만큼 먼 역사다.
기성세대와의 인식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해방 당시만 해도 북한의 국력은 여러모로 한국보다 위에 있었다. 일례로 1945년 한반도의 연평균 발전 용량은 북측(38선 이북)이 전체의 92%에 해당하는 90만9200㎾였고, 남측은 8%인 7만9500㎾에 불과했다.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도 196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우위에 있었다. 그랬던 1인당 GNI가 1960년대 후반 역전돼 이제는 격차가 28.4배에 달한다(한국은행, 2021년 기준). 구글 검색에서 국가별로 1인당 GNI 등을 검색해보면 인접국 또는 경쟁국과 비교돼 나타나는데, 대한민국은 일본·중국·대만 등과 함께 묶이지 북한과 같이 취급되지는 않는다. 북한은 오늘날 2030세대의 유년 시절부터 비교군에 엮이지 못하는 옆 나라였을 뿐이다. 청년들이 '북한은 남'이라고 보는 시선의 이면에는 이와 같은 국력의 차이,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신감이 담겨 있다.
북한의 도발이나 핵 위협에는 강경한 대응을 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보편적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경제력 차이가 30배에 달하는 오늘날까지 종북 척결을 외치고, 북한이 마치 대한민국 체제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나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참새 잡는 데 대포를 쏘는 것과 다름없다. 굳이 따지자면 북한 간첩보다 외국 기업의 산업스파이나 해외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한국에 더 위험한 존재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국격은 상당히 높아졌다. 정치도 그 격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 언제까지 북한처럼 못난 상대를 붙들고 아웅다웅할 것인가. 경제·노동·인구 등 산적한 현안을 놔두고 북한 문제에 집착한다는 건, 그 세력 스스로가 구닥다리 보수임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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