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돈봉투 의혹 불똥 튄 ‘대의원제’···당내에선 “교각살우” 비판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불똥이 돌연 ‘대의원 제도’로 튀었다. 일부 친이재명계 의원들이 돈봉투 의혹 재발 방지 대책으로 대의원제 폐지를 공론화하면서다. 당내에선 “교각살우”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로 출마한 박범계 의원은 지난 20일 SBS 라디오에서 “돈 안 쓰는 당내 경선을 위한 과감한 정치개혁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며 “대의원 중심제가 아니라 권리당원 중심제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원내대표 후보인 김두관 의원은 지난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의원 밥값, 교통비에 소요되는 비용을 빌미로 돈봉투 사건이 일어났다면 구당적 차원에서 대의원제 폐지 등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썼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같은 날 SNS에 “돈봉투 사건이 사실이라면 대의원제도 탓”이라는 박진영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글을 공유했다. 박 부원장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대표 캠프 대변인을 지낸 바 있다.
민주당 권리당원 청원게시판인 국민응답센터에도 대의원제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지난 18일 올라왔다. 청원이 시작된 지 나흘 만에 동의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대의원은 당원을 대의하는 제도이다. 모든 당원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당 소속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 지역위원장, 시·도당위원장 등을 대의원으로 삼아 당무를 결정하고 집행한다. 영남 등 당원 수가 적지만 인구 수는 많은 지역의 가치를 보정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돈봉투 의혹의 근본 원인이 대의원제에 있다고 본다.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표 반영 비율(21년 전당대회 기준 45%)이 가장 높고, 각 지역위원장들이 지역 핵심 당원들을 대의원으로 임명·관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100% 권리당원 투표 로 지도부를 선출하면 돈봉투를 뿌릴 수 있겠느냐는 논리이다.
대의원제에 대한 논란은 이 대표가 선출된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부터 떠올랐다. 권리당원 권한 강화를 주장해온 이 대표 측이 권리당원 대비 대의원 한 표의 가중치가 높다며 그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은 대의원 표 반영 비율을 45%에서 30%로 축소 개정해 지난해 전당대회를 치렀다.
친명계가 돈봉투 의혹과 대의원제를 엮어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 핵심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평상시 대의원이 활동할 것이 있나. 전당대회나 시·도당위원장 선출할 때뿐이지 않나”라며 “이 사건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의원제를 존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대의원제가 돈봉투 의혹의 본질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다. 사건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대의원제 폐지를 화두로 올려 사태의 심각성을 흐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지역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가중치 비율을 조정해서 운영하면 되는 것이지, 문제가 있다고 해서 폐지하는 것은 정당 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의원제를 없애면 누가 당을 위해서 30년, 40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당을 지킬 수 있겠나”라고 했다.
수도권 초선 의원도 “선거공영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지, 대의원제를 폐지하고 전 당원 투표로 하면 몇몇 유튜버들한테 당이 휘둘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지금은 의혹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의혹 당사자로 언급된) 의원들에 대한 당내 처리 방식을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지, 재발 방지 대책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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