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도 '놓치지 않을' 40년차 배우 김희애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4. 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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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김희애, 사진제공=넷플릭스

"황도희의 노련함과 영리함, 반전이 매력적이었다."

배우 김희애는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의 주인공 황도희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문장은 '황도희'를 '김희애'로 치환해도 유효하다.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한 지 40년을 맞은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1967년, 올해 나이 56세.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CF 속 그의 명대사처럼, 지난 40년간 김희애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며 오늘까지 왔다.

지난 10년 간의 필모그래피만 보더라도, 김희애는 항상 주체적이었다. '밀회'(2014)에서는 사랑 앞에 당당한 오혜원 역을 맡았고, 경찰을 소재로 한 '미세스 캅'(2015)에서도 타이틀롤이었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2016)에서 연기한 강민주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여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그 누구도 젊지 않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일 순 있다. 그런 여자가 바로 강민주다.' 그리고 그런 배우가 바로 김희애다.

'부부의 세계'(2020)는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작품이다. 믿었던 남편의 불륜과 주변 인물들의 배신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궈가는 지선우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최고 시청률은 28.4%. 역대 JTBC 드라마 최고 기록이며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철옹성이다.

그리고 3년 만에 김희애가 내놓은 작품은 '퀸메이커'다. 재벌가 전략기획실에서 '재벌가의 똥'을 치우던 일을 하던 황도희가 '코뿔소'라는 별명을 가진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퀸메이커' 김희애(왼쪽), 사진제공=넷플릭스

김희애는 '퀸메이커' 출연 이유에 대해 "주로 남성 배우가 많이 나오는 장르를 보고 '나도 남장하고 나오고 싶다'고 부러워했다"면서 "('퀸메이커')는 여성 서사를 담아낸 작품이고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이어서 배우로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일련의 작품 속에서 보여준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남성 배우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 넘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오랜 기간 남성 중심적이었던 한국 사회의 공기와 연관이 있다. 정치·사회·경제를 남성이 이끌어갔고 문화 영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남성들의 성공 스토리가 각광받았고, 또 그런 이야기를 발굴해냈다. 그 안에서 여배우들의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조력자로 그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희애는 당당히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아들과 딸'이다. 1992∼1993년 MBC에서 64부작으로 방송된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집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의 이야기다. 아들은 배우 최수종, 딸은 김희애가 각각 연기했다. 쌍둥이의 작명에서도 시대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들의 이름은 '귀한 남자'라는 뜻의 귀남이다. 딸의 이름은 후남이다. 여성 임에도 '남'(男)이라는 돌림자를 붙였고, 그나마도 귀남이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로 '후'(後)라는 글자를 이름으로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후남이는 주체적인 삶을 일궈가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배우가 바로 김희애다. 당시 고작 데뷔 10년차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0년차에 접어든 김희애의 선택은 '퀸메이커'였다. 그리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맡은 소임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황도희의 모습은 김희애와 몹시 닮았다. 황도희는 내내 하이힐을 신는다. 촬영 내내 하이힐에서 내려오지 못했다는 그는 "고생 좀 했다"면서 "평소에 나는 운동화를 자주 신고 언제 하이힐을 신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황도희는 하이힐을 갑옷처럼 생각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퀸메이커' 김희애, 사진제공=넷플릭스

'퀸메이커' 초반, 황도희의 하이힐을 비웃는 이를 향해 황도희는 하이힐 속 상처입은 발을 보여준다. 그게 갑옷의 본질이다.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나를 해할 상대와 마주할 전장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갑옷으로 둘렀을지언정 외력에 의한 상처는 남는다. 황도희의 발도 매한가지다. 하이힐 위에 꼿꼿이 서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흔적은 고스란히 발에 남는다.

김희애의 40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40년 간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연예부 기자들의 플래시가 사회부 기자들의 플래시로 바뀐 적도 없다. 좀처럼 구설에 오르지도 않았고,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도 없다는 의미다. 이는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단련시키고 도전하고, 또 도전 상대를 넘어서야 한다. 강산이 4번 변하는 시간 동안 김희애는 그렇게 단단하게 나이테를 둘렀다.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책받침' 스타를 거쳐 단독 주연이 가능한 연기파 여배우로 도약했고, 이제는 50대 중후반에도 능히 작품 하나를 책임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이 시점에, 김희애는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퀸메이커'는 공개 후 사흘간 1587만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넷플릭스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하고 12개국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부부의 세계'의 시청률 28.4%에 못지않은 성과다.

김희애는 황도희에 대해 "한 대 맞으면 두 대로 갚아지는 인물"이라며 "어떤 작품이던 인간과 캐릭터가 하나의 인물로 동기화되는 것이 첫 번째다. 황도희라는 인물과 철학, 감정 등 여러 가지를 일치시켜나갔다"고 말했다. 단순히 연기력만으로는 40년을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김희애가 아직도 건재한 건, 이처럼 자신만의 연기 철학이 덧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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