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엔 ‘더글로리’같은 ‘사이다’ 없어… 삶이란 ‘이유없는 폭력’[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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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는 14세의 '나'를 통해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소설이다.
소년 화자는 소설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한편'인 고지마가 "모든 약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괴롭힘을 받아들이고,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소설은 아주 가끔 '나'가 고지마의 편지에서 맛보았을 소소한 기쁨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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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미에코│이지수 옮김│책세상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는 14세의 ‘나’를 통해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소설이다. 1990년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현재 일본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인 가와카미 미에코의 첫 장편소설로, 2022년 영국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년 화자는 소설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늘 ‘사팔뜨기’라고 놀림받는 ‘나’는 인기 많고 공부도 잘하는 니노미야 일행에게 매일 난폭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다 같은 반 또 다른 ‘왕따’ 고지마로부터 “우리는 한편이야”라고 쓴 쪽지를 받으며 두 사람의 교류가 시작되고, 파괴적인 일상에서 아주 작은 숨구멍을 얻는다.
학교 폭력은 명확하지만, 다소 그 전개가 예상 가능한 소재다. 그러나 ‘헤븐’은 술술 읽히면서도 쉽게 읽을 수는 없다. 독자들은 얼핏 타당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생각에 갇히거나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소설이 단순히 고질적 사회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거나,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사이다’ 같은 복수극을 펼치지도 않으며, 권선징악과 같은 교과서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한편’인 고지마가 “모든 약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괴롭힘을 받아들이고,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가해자 모모세로부터는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벌어지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답을 듣고, 더욱 절망적이 되어 간다. 고지마와 모모세의 말은 궤변일까, 나름의 철학일까. 소설은 대립적인 그들의 논리를 통해 약자와 강자가 지구 위에 어떻게 내던져지는지,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규범과 도덕을, 또한 개인의 윤리적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읽는 내내 고통스럽다.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잔혹한 폭력이 ‘자연현상’인 양 평범하고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고지마도 될 수 없고 모모세도 될 수 없는 ‘나’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쉽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소설은 아주 가끔 ‘나’가 고지마의 편지에서 맛보았을 소소한 기쁨을 줄 뿐이다. 고지마가 쪽지를 보내던 순간, 연대와 우정으로 손을 잡는 장면, 현실 공간을 벗어나 어느 미술관에서 둘만의 ‘헤븐’을 꿈꾸던 마음 등….
소설은 결론도, 방향도 제시하지 않는데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점점 더 불안하다. 책을 덮는 순간, 등장인물들이 겪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참혹한 세상과 골치 아픈 모순들을 마주해야 하니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와 ‘고지마’ 그리고 ‘모모세’ 중 누군가이고, 그들을 적당히 섞어 놓은 그 무엇이기에. 296쪽, 1만4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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