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천조국에서는 제조업이 국가안보라고 저 난리 치는데…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3. 4. 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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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경제 3대 주체’라 하면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를 꼽는다. 가계가 경제 주체라는 점은 그 어원과 상통한다. 경제 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 있다. 이는 집, 가정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다스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노미아(Nomia)의 합성어이니, ‘가정을 다스리는 것’ 즉 가계(家計)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기원 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부의 추구’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한자 문화권에서 경제의 어원은 ‘다스릴 경(經)’자를 써서 세상 또는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경세제민(經世濟民) 또는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약자이다. 경제를 단순한 개인(가계)적 부의 추구에서 국가적 개념으로 확대하여 백성을 구하기(濟民) 위한 정부의 활동으로 보아 일찌감치 정부를 경제주체로 인식한 것이다. 경세(經世)라는 말은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많이 사용했으니 서양이든 동양이든 경제라는 개념은 2,500년 역사의 유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저술하여 토지, 조세, 환곡 등에서 각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정부 개혁을 통한 경제 부흥을 주장하였으니, 경제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을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통찰할 때 경세제민 즉, 경제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안보를 위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이었고, 그 점은 춘추전국시대부터 강조되었다. 이런 개념을 철저히 실천한 인물이 진시황이다. 그는 어렵사리 이룬 통일 제국을 유지하고자 탁월한 경제 마인드를 가지고 화폐 개혁, 도량형 통일 등 경제 개혁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여 강국으로서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특히 이윤이 많은 소금과 철의 전매권을 정부가 장악함으로써 철제 무기를 독점하며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당대 최고의 경제대국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 조정된다는 자유방임적 고전주의 경제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당시 인도, 중국 그리고 독립 전 미국의 경제상황을 정확히 통찰하였고, 인도나 중국보다는 자유방임적 경제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신대륙 미국의 경제가 훨씬 바람직하며 발전하는 경제라고 ‘국부론’에서 진단하였다.

그의 진단대로 독립 후 미국은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1890년대에 세계 제일의 공업국으로 부상하였고, 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미국 경제는 금융, 보험 등 서비스업의 발전도 부수적으로 불러일으켜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부국강병의 최고봉이 되었다. 이는 미국의 1년 국방비가 천 조원이 넘기 때문에 얻은 ‘천조국(千兆國)’이라는 별명에서도 인정할 수 있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터진 금융위기는 미국정부에게 경제주체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보고 각성할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PCAST(과학기술자문위원회; President’s Council of Advisors on Science & Technology)’를 설치하여 미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점을 진단하도록 했다.

진단 결과는 한마디로 미국 제조업의 쇠퇴가 금융위기까지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상황 중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먼저, 2009년 파산보호 신청한 GM이다. 노조의 요구에 따라 퇴직자에게도 줘야하는 의료보험 및 연금 등 복지비용(이른바 Legacy Cost)이 차 한대 당 1,500 달러를 차지하는 원가구조를 초래하였다. 이렇게 경쟁력을 잃은 제조업은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금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등 변칙적 영업을 하며 연명하였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은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취직하여 고국에 우호적인 역할을 알게 모르게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으로 인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31.8%나 감소하였다.

이런 현실을 파악한 PCAST가 여러 차례의 보고서를 통해 경제주체로서 정부는 제조업 부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20세기까지 미국이 전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였으나, 21세기 들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졌고, 그 하락폭은 그대로 중국이 차지하면서 상승하고 있다.

‘굴기(崛起)’로 포장된 중국의 패권 도전으로 국가안보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PCAST의 보고서는 결국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즉, 제조업이 곧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이며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이니 기존의 자유방임주의적 정책기조에서 벗어나 가능한 경제정책적 수단을 다 써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해 졌다. 중국의 도전에 대한 견제로 또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Reshoring)을 위해서 국제경제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기 보다는 적극적 경제정책, 즉 ‘보이는 손’으로 ‘경제적 통치기법(Economic Statecraft)’을 과감히 사용해야 할 때라고 인식한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하여 ‘군사적 통치기법(Military Statecraft)’을 전통적으로 써 왔지만, 이젠 경제정책적 수단도 쓰자는 것이 ‘Economic Statecraft’이다.

작년(2022년)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우리 초국적기업의 미국 투자 발표 그리고 이어진 IRA(인플레이션 감축 법; Inflation Reduction Act)의 발효와 올해 그 세부지침의 발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IRA는 그 이름만으로 보면 ‘인플레이션 잡는 법’인데, 뉴스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대당 7,500불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집중하고 있으니 일반인은 혼란스럽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야기된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태어난 IRA는 법인세 인상 등 증세를 통해 총 7,370억 달러(약 885조원)를 더 거둬들이고, 10년간 4,370억 달러(약 524조원)를 지출하겠다는 것이니 인플레이션 감축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맞는다. 그 지출항목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기후변화 대비 친환경 생태계에 감세 또는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 그 큰 틀이다.

그 보조금과 감세의 적격 대상이 되려면 북미(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 USMCA 협정국가)에서 조립되고, 거기에서 생산된 핵심 광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요건이 전기차 보조금의 요체이다. 기존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것이 입법 기조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아니 대놓고 하는 ‘경제적 통치전략’의 최신 버전인데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 지어 노골적인 발톱을 약간 감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이후 제조업을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의 초석으로 본 미국의 경제관이 집대성되어 나타난 것이 2022년의 IRA와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또 작년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발표된 것처럼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 견제용 ‘경제적 통치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기존의 공급망에서 유탄의 피해를 받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위기는 기회이다. IRA에도 뚫고 들어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제조업은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현지 조달, 현지 생산의 기존 전략을 흔들리지 말고 추진하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은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와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이다. 스마트 팩토리는 최소의 비용과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최고의 효율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 제조, 유통 등의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는 지능형 공장을 의미한다. 서비타이제이션이란 제조업의 밸루 체인(Value Chain)에 고객이 각자 원하는 서비스를 추가하여 만족도를 제고하는 쌍방향적 제조업을 의미한다.

작금의 국제 정세에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말이 새롭게 와 닿는다. 글로벌 경제에서 다스릴 경(經)자의 대상인 세상은 우리나라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들의 경제안보와 국가안보가 제조업에 달려 있다고 저 난리인데 우리만 가만히 앉아 제조업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경제주체 정부의 ‘보이는 손’이 더 바빠져야 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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