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랙] ‘1000이닝 잠수함’ 박종훈 운명 가를 5㎝, 이것에 65억이 달렸다

김태우 기자 2023. 4.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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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당시의 박종훈 투구 장면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수원, 김태우 기자] KBO리그를 거쳐 간 옆구리 유형 투수는 수없이 많았지만, 1000이닝 이상을 던진 선수는 손에 꼽을 만하다. 그중 정통 잠수함이라고 할 수 있는 언더핸드 유형의 선수는 거의 드물다.

김원형 SSG 감독은 19일 수원 kt전을 앞두고 “하나의 이유는 선발투수로 오랫동안 뛴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짧게 1~2이닝을 던지면서 성공할 수는 있는데 긴 이닝을 던지려면 확실한 무기가 구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언더핸드 유형은 선발투수로 수명이 짧다는 인식이 있다. 기량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투구폼 탓에 고질적으로 허리와 무릎에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들이 많았던 영향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SSG 잠수함 박종훈(32)은 특이한 선수다. 꾸준히 선발투수로 육성됐고, 꾸준히 선발투수로 뛰었다. 통산 69승을 거두고 있는 박종훈은 지난 7일 대전 한화전에서 6이닝을 던지며 개인 통산 1000이닝 고지를 넘어섰다. 철저한 자기 관리, 그리고 나름대로의 실적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숫자다. 정통 언더핸드 투수로 현재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박종훈은 리그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공을 놓는 선수다. 어렸을 때는 때로 손등이 마운드를 긁어 피가 날 정도였다. 낮으면 낮을수록 타자의 시야에서 공이 사라지는 효과가 있다. 존을 낮게 보지 않는 한 무릎 높이에 박히는 투심(싱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낮은 쪽에서 날아오다 갑자기 시야로 치솟는 커브의 조합은 박종훈이 1000이닝을 던질 수 있었던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높이가 흔들린다. 물론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낮은 릴리스포인트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공을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세한 차이라고는 하나 데이터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박종훈의 투구 내용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더 주목할 만한 요소가 된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에 따르면, 박종훈은 팔꿈치 수술을 받기 직전인 2021년 평균적으로 지면 대비 평균 37㎝ 위에서 패스트볼(포심+싱커)을 놨다. 2020년은 35㎝였다. 지난해 복귀 후에도 릴리스포인트는 32㎝로 낮았다. 그런데 올해는 평균 41㎝로 높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보기 어려운 릴리스포인트 55㎝ 이상의 싱커도 꽤 자주 잡힌다.

5㎝ 남짓의 차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버핸드 투수의 팔 높이가 5㎝ 낮아진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그간의 공 움직임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2023년 박종훈의 투구 장면 ⓒSSG랜더스

정민태 SPOTV 해설위원은 “공을 놓는 높이가 높아지면서 싱커와 커브의 무브먼트가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박종훈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커브의 무브먼트가 달라졌다. 정 위원은 “예전에는 공이 위로 솟구쳤다면, 이제는 옆으로 돌아 나온다”고 했다.

이 무브먼트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19일 수원 kt전에서 확인됐다. 물론 피장타도 있었지만, 이날 박종훈의 피안타는 상당수가 그렇게 잘 맞지 않은 타구였다. 정타가 되기보다는 약간 빗맞거나 먹힌 타구들이 안타로 이어지며 박종훈을 괴롭게 했다.

특히 3회가 그랬다. 싱커와 커브의 릴리스포인트가 높아지면서 공의 움직임이 평소처럼 나오지 않았다. 즉, 무브먼트가 이보다 조금 더 좋았다면 헛스윙이 되거나 더 약한 타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 반 개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반대로 4회부터는 대다수 싱커들의 릴리스포인트가 40㎝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가 그 문제는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박종훈은 4회부터 6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버텼다.

의도적으로 릴리스포인트를 조정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팔꿈치 수술 여파가 아직 있다. 박종훈은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닌데, 팔꿈치 수술 후 아프지 않게 던지려는 방법을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올라간 것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커브가 돌아나오는 것도 맞다"면서 "(19일에는) 4회부터 다시 포인트가 내려가면서 괜찮아졌다. 근본적인 문제라면 빨리 고쳐야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박종훈이 경력 내내 싸우고 있는 일관성의 문제다.

박종훈도 30대에 접어들었고, 언더핸드 특성상 지금부터 극적으로 더 빠른 구속을 던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특유의 낮은 릴리스포인트에서 자신의 주무기 움직임을 가다듬는다면 충분히 더 경쟁력 있는 선발투수로 뛸 수 있다.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본 적이 없다고 자신하는 박종훈이라면 가능하다. 기복은 어쩔 수 없겠지만 나쁜 날보다는 좋은 날이 두 배는 많아야 한다. 이는 5년 65억 원의 계약 성패를 가를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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