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2’ 이제훈 “배우로서 사회현상 말할 수 있어서 감사, 책임감 느낀다”[스경X인터뷰]
영화를 너무 좋아하던 소년은 배우로서 청년을 살고 있고, 또 영화인으로 나이들 중년을 꿈꾸고 있다. 배우 이제훈의 이야기다. ‘이제훈’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수식어로 한정하기에는 너무도 다채로운 색을 지닌 이름이 됐다.
그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데에는 드라마 ‘모범택시’의 영향도 컸다. 2021년 첫 시즌이 시작하고 최근 두 번째 시즌이 막을 내린 ‘모범택시’는 사설 복수대행 서비스업체 무지개 운수를 배경으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범죄를 이 단체가 단죄하는 내용을 다뤘다. 이제훈은 두 작품을 통틀어 무려 11개의 부캐릭터를 소화했다.
“전 시즌보다는 조금 더 예리하고 뾰족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어요. 그 때문에 시즌 2 시작 감옥 안에서 상체를 노출하는 장면도 운동하며 신경 썼고요. 이번 시즌에서는 ‘농부 도기’가 가장 재밌었어요. 사투리도 쓸 줄 몰랐는데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신혼부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연기하고 나니 로맨틱 코미디가 더 하고 싶어졌어요.”
다채로운 부캐릭터의 향연도 있지만 ‘모범택시 2;는 그사이 또 늘어난 대한민국의 각종 범죄 그늘을 다뤘다.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사건, 돌려차기 살인미수 사건, 파타야 공대생 살인사건, 노인 대상 사기, 미등기 전매를 이용한 아동 학대, 사이비 종교, 대리 수술과 그 유명한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게이트가 소재로 쓰였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이야기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잖아요. 과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벌을 받았느냐, 사회적 동의를 얻을 만한 해결이 있었느냐는 의문이 나오죠. 드라마는 그걸 판타지를 통해 풀어보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많은 분이 웃고 즐기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다시 되새기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논의가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배우로서,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사회현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는 감사하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훈이 이렇게 작품에 대해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실제로 자잘한 대사나 동선뿐 아니라 캐릭터의 구축, 심지어는 극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자로 의견을 내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tvN 드라마 ‘시그널’ 때부터 이러한 작업을 작가, 감독의 동의 아래 진행했으며, 영화로는 2017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이 시작이었다.
“시즌 2는 사전 제작이었어요. 촬영을 마쳐야 하는 기한이 있어,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죠. 첫 방송 날짜가 나오고 후반작업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누면서, 편집점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나 의견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긴장했던 것 같아요. 저는 더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많이 났어요. 무사히 작품을 마칠 수 있다는 감사함 때문이에요.”
단순히 출연료를 받고 잠시 인연을 맺는 사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내 작품’이라는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작업이었기에 촬영현장에서 이제훈의 모습은 단순한 배우가 아닌 작품의 주체였고 중심이었다. 많은 배우들은 그런 그에게 현장에서 카리스마를 느꼈고, 이제훈은 거꾸로 고마움을 느꼈다.
“남궁민 선배님이나 김소연 선배님 등 특별출연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런 부분을 놓고 마치 마블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여러 작품의 세계관을 묶어서 봐주시는 부분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저 스스로도 계속 궁금함이 생기고, 시즌 3가 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 나오게 될지 기대됩니다. 김의성 선배를 비롯해 장혁진 선배, 배유람, 표예진 등 배우들과 함께 하는 건 늘 의지가 되고요.”
20대 초반부터 단편영화에서 연기를 시작해 2011년 ‘파수꾼’과 ‘고지전’, 2012년 ‘건축학개론’을 통해 인기를 얻은 이후 벌써 17~18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도 역시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다. 30대에는 배우로서의 지평을 넓힌 시기였다면, 40대에는 더 넓은 부분을 보고 있다. 그는 제작과 배급, 영화관 건립에 대한 자그마한 의지를 밝혔다.
“소지섭 선배가 제작과 배급일을 오래 해오셨어요. 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데 언젠가 뵙게 되면 여쭤보고 싶어요. 작은 극장을 만드는 일도 꿈입니다. 이정재나 정우성 선배님처럼 배우 외에도 꿈을 펼쳐가시는 분들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배우로서 내공을 쌓아야 하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되기도 하고요.”
영화가 너무 좋은 이제훈은, 코로나19 시대 이후 줄어든 극장관람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면서도 “영화인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순간, 이제훈에게서는 단순히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아닌 영화 예술을 좀 더 폭넓게 품고 있는 큰 사람의 아우라가 보인다. 일단 ‘모범택시’로 더 달리고 싶다.
“시즌 3에 대한 제안은 없네요? 사회적으로 번지는 사건이 많아요. 시즌 2 막바지의 군 관련 사건이나 코인 관련 사건들…. 일본 영화처럼 드라마의 소재를 갖고 멋진 두 시간 극장판 ‘모범택시’를 만들어봐도 멋질 것 같아요!”(두 눈을 반짝인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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