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영끌 올인" 한 방 노린 2030의 최후…'개인회생' 역대 최대

심재현 기자, 박다영 기자, 성시호 기자 2023. 4.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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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빚에 떠밀린 청년들, 파산 내몰린 기업들(上)

[편집자주] 빚에 떠밀려 회생 파산을 신청하는 2030대가 역대 최대다. 빚투와 영끌에 올인했다 회생법원 앞에 줄선 청년들이 경제회복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침체 속에서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들도 크게 증가했다.

'빚폭탄' 안고 법원 가는 2030…'영끌·빚투' 후폭풍, 최악 안 왔다

빚을 갚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가 지난달 1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 중에선 2030 세대가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수치 모두 서울회생법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시대'와 맞물려 가상화폐·주식 빚투(빚내서 투자)와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에 뛰어든 2030 직장인이 늘면서 청년 도산 문제가 현실화한 것이다. 개인회생과 파산이 노년층을 넘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세대로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의 경제 잠재력이 위협당하고 있다.

20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3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이 1만1228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7455건)보다 50%가 늘었다. 올 들어 누적 건수도 3만182건으로 법원통계가 발표된 2013년 이후 최대다. 일반적으로 연말에 몰리던 개인회생 신청이 올해는 연초부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찮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급증한 20·30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사상 최대 기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30대의 개인회생 증가세는 서울회생법원이 이날 발표한 '2022년 개인회생 사건 통계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또렷히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자 가운데 2030세대의 비중이 46.6%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법원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20년 42.5%에서 2021년 45.1%로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다시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사회 초년생으로 금융활동이 많지 않은 20대만 추려내도 지난해 15.2%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30세대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2021년 5718건에서 지난해 6913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2030세대의 개인회생 신청 건수와 비중이 최근 2~3년 사이 가파른 동반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그동안 은퇴자를 비롯해 주로 경제활동이 적은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던 개인회생 문제가 청년세대의 새로운 사회문제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20·30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크게 늘어난 것을 두고 법조계와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맞물린 3고 상황에 절망한 청년세대가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뛰어든 영끌·빚투의 결과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서영 회생파산연구소 변호사는 "그동안에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저금리였고 만기도 넉넉하게 연장해줬는데 지난해부터 금리가 2배, 3배 오르니 감당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제 시작이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2021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영끌 대출로 집을 산 2030세대 중에서 고금리를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 447만4000명 가운데 2030세대가 141만9000명으로 1년 사이 6만5000명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 기간 60대 이상의 다중 채무자는 4만명, 50대는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고 40대는 오히려 3만4000명 줄었다. 전문가들은 청년 채무상황이 악화되는 만큼 회생 신청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

시야를 가계에서 경제 전반으로 넓히면 기업들의 상황도 악화일로다. 경영악화 위기에 몰린 한계기업이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법인파산 신청은 올 들어 지난 3월까지 누적 326건으로 기업회생 신청(193건)을 웃돈다. 지난해 같은 기간(216건)과 비교하면 50.9% 늘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차례 나왔다.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가 지난해 전문법관 확충을 권고하고 올 들어 수원과 부산에 각각 회생법원이 새로 개원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정책이사(법무법인 융평 대표변호사)는 "얼어붙은 경기와 고금리에 한계기업과 한계청년층이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과 청년세대가 주저앉으면 성장동력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벼락거지 봤잖아" 대출, 또 대출…2030 영끌 못 끊은 이유
경제 좌절감에 빚더미 투자, 3고(高) 소용돌이에 자포자기 가속


직장인 김모씨(29)는 2년 전 대출을 받아 주식과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이미 대학 학자금 대출로 2000만원의 빚을 지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터였다. 주변에서 "'빚투(빚내서 투자)하다가 큰일 난다"고 말렸지만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려면 월급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투자금액을 늘렸다. 하지만 주식·코인시장은 곤두박질하기 시작했고, 김씨의 빚은 8000만원으로 늘었다. 이자를 갚기도 벅차게 되자 김씨는 올 2월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지난해 2030세대의 개인회생이 급증한 데는 청년세대가 느끼는 경제적 불안감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 착실하게 월급을 모아 자산을 늘리려던 부모·선배 세대들이 2017~2021년 부동산·주식·코인 열풍 앞에 좌절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빚투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내몰린 20·30대가 결국 또 쓴맛을 봤다는 얘기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법원 앞에 줄 선 청년들의 모습이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에 파인 상처를 비춘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 가운데 20·30대의 증가폭이 가장 큰 것도 청년세대의 불안감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 447만4000명 가운데 2030세대가 141만9000명으로 1년 사이 6만5000명 늘어 40~60대를 압도했다.

지방법원 파산부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이어서 금융 활동이 많지 않은 20대와 30대가 은행마다 빚을 지고 결국 회생법원까지 찾아가는 현상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생·파산을 상담하러 찾아오는 20·30대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주요 10개 증권사 기준 20·30대의 신용융자잔액이 2021년 6월말 기준 3조6000억원으로 2020년 6월말 1조90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2030세대에서 빚을 낸 투자가 1년 새 곱절로 늘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 이런 추세는 더 가팔라졌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3월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만1228건으로 서울회생법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월 평균 7000건대였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1월 9085건, 12월 8855건을 기록하다 올해 들어 1월 9216건, 2월 9736건에 이어 3개월째 증가세를 보였다. 올 들어 3월까지 개인파산 누적 신청도 1만12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904건)보다 200건 이상 늘었다. 지난해 상황에 비춰보면 개인회생·파산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로 추산된다.

올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 소용돌이가 계속되면서 빚에 허덕이는 20·30대의 자포자기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서 개인회생·파산 건수가 월 1만건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손석우 건국대 겸임교수는 "가계와 개인들이 버틸 체력을 잘 비축하는 게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저신용자나 저소득층,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회생불가능한 수준으로 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지원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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