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세월이 장애를 만든다

조성순 수필가 2023. 4.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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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이 넘은 시인은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한 대학에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모인 동인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가 아닌 책을 출간해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에 내심 걱정이 됐다.

휠체어에 의지한 노 시인이나 허리수술을 한 지인, 보청기를 끼고 나타난 동인이 그런 것처럼 흐르는 시간이 만든 장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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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수필가

90이 넘은 시인은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한 대학에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모인 동인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이미 등단해 문단에 이름을 올린 기성문인을 비롯해 문학소녀로 돌아가고픈 이들, 학창시절 교지에 작품을 올려본 이들이 모였던 때는 2005년이었다.

그 대학의 명예교수였던 시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직설적이며 열정이 넘치는 분으로 이미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동인들 모두 학구열이 불타던 시기라 문학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창간에 이르기까지 교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몇 년의 공백 동안 가끔 통화만 하다가 육 개월 전에 원로문인 초청에서 뵙게 됐다. 그때만 해도 좌중을 압도하는 달변으로 차려놓은 음식이 다 식을 지경이었는데 이날은 통 말씀이 없으시다. 눈을 감고 반은 졸고 계신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제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지자체마다 기념행사로 여기저기 불러 다니고 사진 촬영에 응해야 하는, 정작 주인공들은 피곤한 날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장애 하나는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도, 등급이 주어진 경우가 아니어도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 전 시각장애인 출판기념회에 갔다. 낯선 일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가 아닌 책을 출간해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에 내심 걱정이 됐다. 행사에 가면 그들을 안내하고 도움을 줘야 할텐데 한 번도 시각장애를 가진 이를 가까이 만나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가당치않은, 무례한 걱정이었다. 미리 알고 오지 않았다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단상에 오를 때 약간의 도움을 받을 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강좌를 3년 동안 진행해 여성시각장애인 수필집을 발간하는데 도움을 준 작가가 있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그녀들과 행복을 찾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다. 굳이 장애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면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그 수필집을 보니 선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보다 후천적인 경우가 많았다.

세월이 장애를 만든다. 휠체어에 의지한 노 시인이나 허리수술을 한 지인, 보청기를 끼고 나타난 동인이 그런 것처럼 흐르는 시간이 만든 장애다. 흔하게 교통사고나 오랜 지병으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입는다. 육체적으로 멀쩡해도 마음이 병들어 힘들거나, 노환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이들도 많다. 결국 나도 언젠가 장애를 겪을 수 있을 텐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마음이 엄청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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