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매니페스토와 신뢰
단체장들, '헛구호, 프레임' 아닌 '명확성-효과성' 등 담보 요구
유권자와 단체장간 신뢰 구축 빠른 길은 '정책 실행력 높여야'
정책 구현은 정책이 실행되는 프로세스다. 그것은 규제를 개발하고, 자원을 할당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조정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정책수행의 성공 여부는 정책목표의 명확성, 자원의 가용성, 이해관계자의 지원수준, 모니터링과 평가의 효과성 등 다양한 요인에 달려 있다.
정책 공약 이행을 평가할 때 한 가지 과제는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고, 그 효과가 항상 즉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정책은 완전히 구현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고, 어떤 정책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즉, 자원의 배분, 규제의 발전, 이해관계자 참여 수준 등 주요 지표를 추적해 정책 추진의 진척도를 평가할 수 있다. 정부 기관과 독립 기관이 수행한 보고서와 평가는 정책 시행의 효과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난해 12월 시정 4기 8대 분야 61개 공약과제 이행계획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지방선거 직후 세종시장 인수위원회가 구체화한 공약을 놓고 그보다 앞서 8-9월에 소요예산, 재원 조달방안, 이행기간 및 절차 등 실현가능성 위주로 면밀한 검토를 진행한 결과물이었다. 이후 10-11월 시민배심원단 논의,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최종 권고안 마련 등 검증 절차도 밟았다고 했다. '세종특별자치시'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향하는, 일종의 종합적인 '정책명세서'인 셈이다. 일부 정책은 정도에 따라 시행된 반면 나머지 정책은 아직 기획이나 개발 단계의 수준일 것이다. 역시 공약으로 내건 사항들에 대해 계속 점검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전국 시·도지사 공약실천계획 평가에서 대전시만 'D등급'을 받은 것과 관련해 이장우 대전시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용역비를 받아 지자체를 평가하는 건 부패한 구조"라며 "왜곡된 구조를 깨야 하고, 관행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앞서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17일 시·도지사 공약실천계획 평가를 공개하면서 불참 의사를 밝힌 대전시를 최하위등급(D등급)으로 분류한데 발끈한 것이다.
이 시장이 A등급을 받았어도 이런 해명을 했을지는 둘째 문제다. 매니페스토 개념은 1834년 영국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정신이 꾸준히 이어지다가 1990년대부터는 출마자가 투명한 공약을 제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집권에 성공한 것 역시 매니페스토 10대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데 힘입었다.
최근 영국 학계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각 대학 교수들이 '유스턴 매니페스토'라는 모임을 만든 것이다. 매니페스토는 토론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은 매니페스토를 통해 국가발전과 합리적 토론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고 있다.
어떤 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나 등급을 받고 싶지 않은 건 학생이나 직장인 못지않게 단체장 등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정책과 높은 실행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그 평가에 앞서 실현가능성, 행위, 실행력, 검증 절차 등이 담보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한정된 재원으로 도시를 경쟁력 있게 만드는 고민부터 하면 될 일이다. 그게 선출직 공무원, 단체장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단체장들이 공약으로 내건 상황을 취임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가시성, 실천력 등이 두드러지길 바라는 유권자들도 없을 것이다. 가능성 있는 정책들, 그들의 잠재적 이행 현황을 눈여겨보고 있을 뿐이다. 특히 단체장들은 정기적인 보고서 및 평가를 통해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파악해야 한다. 그게 유권자인 시민과 단체장간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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