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센스, 뉴진스, 뽕짝까지 모두 ‘이 사람’ 손 거쳤다
250(이오공)의 앨범 〈뽕〉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1번 트랙 52초쯤 예상치 못한 감정 변화를 느낄지도 모른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전자음이 잦아들고 한 남성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종잡을 수 없이 시작되는 부분. 희로애락도 지나고 보니 꿈처럼 느껴지더라는 목소리가 담담해서 더 애잔하다. 〈뽕〉의 첫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를 부른 김수일씨는 신바람 이박사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한평생 음악인으로 살았어도 제대로 조명받은 적은 없다. 4분가량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김수일씨가 겸연쩍다는 듯 읊조린다.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
그 말이 마치 본인 이야기처럼 들렸다. 프로듀서 250은 이박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김수일의 미발표곡을 듣고 흠뻑 빠져버렸다. 조용히 넋두리하듯 들리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서글퍼서” 그날 녹음본을 그대로 썼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박사가 아니라 김수일이더라. 이박사는 유명한 가수이지만 그 뒤에서 건반을 치던 김수일의 자작곡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가수가 아닌 250이 김수일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첫 정규앨범을 시작한 이유다. 현대적인 전자음악으로 재해석된 뽕짝 메들리가 흥겨우면서도 애잔하고, 그래서 묘하게 웃기다. “그 슬픈 기분을 안고 달리는 게 뽕인 것 같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처음엔 한국인들이 어떤 노래로 춤을 추는지 찾아내겠다는 목적이었다. 한국 댄스음악의 뿌리에는 ‘뽕짝’이 있었다. 서울 동묘시장부터 전국노래자랑 예선, 경기도 이천 덕평 자연휴게소, 제주도 5일장, 경남 합천 바캉스 축제까지 전국을 누비며 뽕짝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영등포 성인댄스 교습소에서 ‘246 삼박자 리듬짝 댄스’를 배우기도 하는데, “젊은 세대에는 없는 독자적인 문화”라고 일컫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다섯 편에 담았다. ‘뽕을 찾아서’라는 궁서체 뒤로 검붉은 뽕나무 열매가 첫 장면이다. B급 유머로 가득한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그 과정이 꽤 진지해서 감동적이다. 김수일의 녹음본을 얻은 날, 처음으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찾은 느낌이었다고 250은 말한다.
〈뽕〉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했지만, 그다지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을 다시 무대로 소환한다. 테크노 뽕짝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박사 외에도 기타리스트 신중현, 작사가 양인자, 색소폰 거장 이정식, 오르가니스트 나운도, TV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까지 베테랑 음악가들이 흔쾌히 수락했다.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뽕짝이 가장 힙한 음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1982년생 프로듀서에겐 “그리움을 좇는 과정”이었고, 선배 음악가들에겐 “확 깨이는 것 같은(나운도)” 시간이었다. 영국 음악 잡지 〈와이어〉는 “250의 성취는 음악적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뽕을 찾아가는 전체에 있다. 장르뿐 아니라 문화적 감정에 대한 그의 탐색은 한국과 아시아 전역에 반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250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화제의 인물로 손꼽힌다. 이호형이란 본명에서 비롯된 ‘이오공’은 지난 3월5일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이다. 〈뽕〉으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 부문까지 4관왕을 차지한다. 올해의 음반으로 일렉트로닉 장르가 선정된 건 최초다. 그가 작곡한 뉴진스의 ‘어텐션(Attention)’ ‘하입 보이(Hype boy)’ ‘디토(Ditto)’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래퍼 이센스와 케이팝 그룹 뉴진스, 〈뽕〉의 작곡가가 한 사람인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4월3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250은 “나는 애초에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촌스럽고 세련된, 슬프지만 웃긴, 흥겨운데 눈물나는, 그의 모순적인 음악 세계를 들여다봤다.
김작가 선정위원이 ‘올해의 음악인’ 심사평으로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과거를 가장 앞선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라고 평가했다.
그 말이 가장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 부분이기도 했다. 뽕짝이라는 건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아는 음악이다. 시장에 가거나 고속도로 휴게소만 들러도 흔하게 접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 유독 많이 들리는 음악이다 보니 조금은 자기 비하적으로 뽕짝을 해석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비하적으로?
집 반찬 같은 것이랄까. 손님이 왔는데 이거 먹어보라고 꺼내놓기는 조금 민망한 것. 그런데 항상 냉장고엔 있고 나는 맛있는데 남들도 맛있을지는 잘 모르겠는, 그런 음식. 예쁘게 가니시(고명)까지 올려놓기에는 좀 새삼스러운 느낌이 뽕짝에도 있는 것 같다.
클럽 DJ, 힙합·케이팝 프로듀서라는 이력이 뽕짝과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세련된 척 음악을 만들어놓고 나면 내 음악 같지 않은 느낌이 항상 있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그럼 뭘 했을 때 내 음악이라고 느껴질까 생각해보니,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가야 만족이 되겠더라. 회사에서 ‘뽕’으로 앨범 타이틀을 제안했을 때 어딘가 확 꽂혔던 이유다. 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1980년대 에로영화 〈뽕〉이나 당시 뉴스에 나오던 ‘히로뽕’으로 대표되는 시대상이었다. 1980년대는 내가 가닿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곳,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250의 첫 번째 앨범인 만큼 내가 태어나고 자란 1980년대라는 시대를 끄집어내보고 싶었다.
〈뽕〉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베테랑 음악가들과의 협업은 어땠나?
나운도 선생님은 원래 건반 사운드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어서 꼭 만나뵈려 했다. 무작정 콜라텍에 찾아갔는데 흔쾌히 허락하셨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때라 공연장엔 아무도 없었다. 그 무렵 내가 꽂혀 있던 곡이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라는 곡이었다. “혹시 ‘춤을 추어요’라는 곡 아시냐”라고 여쭸더니 바로 “장은숙씨 노래요?” 그러시더라. 악기를 세팅하고 녹음 준비가 끝나자마자 노래를 부르시는데 정말 대단했다. 트로트 수백 곡 정도는 바로 나올 수 있도록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촌스러울 것이라는 뽕짝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는 댓글 반응이 많더라.
음반에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새로움에 열려 있었다. ‘춤을 추어요’ 같은 경우도 기존 반주를 내 멋대로 뜯어고치다시피 했다. ‘네가 뭔데 내 목소리를 가지고 함부로 바꾸냐’고 화낼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나운도 선생님이 “남들이 안 하는 영역의 것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좋네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앨범을 만들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좋았다. 굉장히 기뻐하고 재미있어하시더라. 뽕짝은 트로트와 달리 하대받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다른 방식의 접근에 대해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뽕을 찾아서’ 전국을 누볐다. 결국 어디서 뽕을 찾았나?
2018년 즈음 안면도에 두 달을 칩거하며 〈뽕〉 앨범 작업을 했다. ‘뱅버스’와 ‘로얄 블루’ 두 곡이 그때 나왔다(뱅버스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 부문 수상곡이다). 서해 바다는 동해 바다와 느낌이 좀 다르더라. 동해 바다가 활기차고 삶의 환희가 느껴진다면 서해는 중년의 바다처럼 쓸쓸한 분위기가 있다. 서해 바다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두 달 동안 보니까 우울해졌다. 그 우울하고 축축한 느낌이 로얄 블루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뱅버스는 고속도로 관광버스에서 뽀글 파마를 한 할머니가 엄지를 치켜들고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뱅버스가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든 노래라면, 로얄 블루는 가장 자유롭게 만든 노래다.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오승원씨가 앨범 마지막 곡 ‘휘날레’를 불렀다. 섭외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둘리 주제가가 굉장히 슬프다. ‘일억 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나가자’ 하는 후렴구를 봐라. 실은 엄마를 잃은 외로운 아기 공룡의 이야기다. 어릴 적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울해졌다. 뽕의 주된 정서가 노스탤지어라는 걸 생각했을 때 1980년대생 나에겐 그 노스탤지어의 정점에 있는 게 〈아기공룡 둘리〉다. 오승원 선생님이 부른 둘리 주제가가 나의 유년기 슬픔에 영향을 미쳤으니, 마찬가지로 선생님 목소리로 앨범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슬픔이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슬픔과 즐거움의 배합이다. 슬프기만 한 노래는 도저히 못 듣겠다. 그런데 거기에다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리듬이 깔린다면, 그 자체로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장례식에서 춤을 추는 문화나 우리나라 장례식에서 고스톱을 치는 문화도 비슷하다. 슬플 때 정적이 맴돌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신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음식으로 치면 아포가토 같은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달아야 하고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여야 한다. 두 가지 맛이 섞였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폭넓은 느낌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요리에 비유를 많이 한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한가?
곡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요리 유튜브를 많이 봤다. 요리는 다 이유가 있더라. 넣는 순서도 재료도 저마다 의미가 있다. 음악 작업은 순서라는 게 없어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오랫동안 혼자서 만들다 보니까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감이 안 잡힌다. 〈뽕〉도 처음부터 ‘7년만 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고민이 해결된 최종 사운드를 들으면서 대체 이게 뭐라고, 나밖에 못 들을 것 같은데 그렇게 골몰했을까 약간 울컥하기도 했다. 그동안 작업했던 케이팝 음악이 팀으로 움직인다면, 이번 앨범은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앨범 재킷에 내 얼굴도 엄청 크게 박아놨고(웃음).
전설적인 전자음악 뮤지션인 다프트 펑크에 빗댄 ‘다프트 뽕크’라는 수식어가 인상적이다. 권석정 심사위원도 ‘뽕’을 두고 “한국인을 관통하는 거대한 감성의 덩어리”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한국적인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필요한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겨를이 딱히 없었다. 작년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독일 음악 축제인 리퍼반 페스티벌에 보내줘서 처음 외국에 나가봤다. 일부러 한국적인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냥 한국에서만 평생을 산 사람이니까 뭘 해도 그냥 한국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과 영국 등 해외에서 호평받는 이유가 뭘까?
일본의 한 평론가가 이 앨범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앨범인 것 같다고 평했는데 그 이야기가 좋았다. 그냥 슬퍼서 가라앉는 음악이긴 싫었다. 슬플 때 그 슬픔을 극복하게 해주는 건 유머다. 유머가 없으면 슬픔은 지옥이 된다. 〈뽕〉을 만들 때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슬픔을 자아내는 뽕짝의 사운드와 현대적인 전자음이 결합되는 방식에서도 웃음이 만들어질 수 있다.
힙합부터 케이팝, 뽕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음악을 창작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휑한 감정, 그걸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일에 쫓기다가 갑자기 멈추고 나면 순간적으로 허한 감정이 들 때가 있지 않나. 그 감정이 인간에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쓸쓸함을 마주하고 있으면 사람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뽕〉이 그런 순간에 잠깐 채워줄 수 있는 신나는 댄스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프지만 조금은 웃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진 욕심이다. 그동안 혼자서 골몰해왔다면, 이제는 음악을 더 개인적으로 더 멋대로 만들 수 있는 자부심과 힘을 얻은 것 같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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