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정부실패, 기업실패, 나라실패
구조적 실패는 독과점적 시장구조에서 자유로운 경쟁과 공정한 거래가 위축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다른 기업들과 평등하게 경쟁하지 않고 공급업체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거나 대기업에 공급할 때 겪는 불공정 갑질 행위의 대부분은 구조적 실패에 기인한다.
제도적 실패는 자원을 배분하는 제도가 불합리해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해지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경제제도가 실패하면 쏠림현상이 촉발해 수급의 괴리가 커져서 풍족한 곳은 남아돌고 필요한 곳은 모자라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가 불거진다.
제도적 실패가 두드러진 대표적 분야가 금융시장이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금융기관 접근성이 제한돼 필요한 자금을 시장에서 구하지 못해 투자에 제약을 받는다. 반면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에는 많은 자금이 몰려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 은행 대출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차별이 존재한다. 중소기업 여신은 리스크가 높게 평가돼 한도가 정해져 있고 대손충당금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실패와 제도적 실패가 맞물려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고해지며 이에 따라 독과점적 구조가 고착되고 자원의 대기업 쏠림현상이 심화해 시장실패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에 시장실패의 악순환 고리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그 병폐가 매우 심각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시장실패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정부가 개입한다. 정부는 구조적 시장실패에 대응해 대기업을 규제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며, 제도적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게 직접 지원을 제공한다. 수많은 규제정책과 지원제도가 시장실패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이 과도하면 반작용으로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금융시장에서 소외되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금융의 규모가 확대되면 민간금융의 발달을 저해한다. 정책금융의 금리와 조건이 민간금융보다 더 좋으면 시장교란의 부작용도 발생한다. 자금 수요자들이 정책금융을 더 선호해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모한다. 시장 선택보다 정부 선택이 자금의 공급을 좌우하게 되며 민간금융도 정책금융의 역할을 맡도록 강요받아 정책논리가 지배하는 관치금융이 판을 치게 된다. 금융뿐 아니라 연구개발, 판로, 수출, 인력 등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확장하면 고비용 저효율의 정부실패가 시장실패를 압도하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호와 지원의 혜택이 커지면 성장동기가 약화한다. 중소기업의 매출이 증가해 중소기업 기준을 벗어나면 제외되는 혜택과 지원이 100여 가지를 넘고, 공공입찰 제한 등 새로 적용받는 규제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중소기업 지위를 누리기 위해 성장을 기피해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혁신과 투자를 소홀히 하는 기업실패(firm failure)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론자는 정부실패와 기업실패를 해소하려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한다. 반대로 정부론자는 시장을 믿을 수 없으니 정부가 더 많이 개입해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맞선다.
문제는 시장의 불균형한 구조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다들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정치권과 협회 등이 모여 정치적 편향성과 이해관계를 앞세워 갈등과 대립을 증폭하면서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도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나라의 실패(state failure)로 이어진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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