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뒤집힌 대러외교…독단적 리더십의 위기
국내서도 우려 목소리…"국민 의사 묻지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도 되나"
이라크 파병 때는 치열한 공방 거쳐…"우크라이나는 더 중차대한 사안"
대통령실 긴급 진화 나서…"외교적 오해 부를 말 한 것 자체도 잘못"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언급이 거센 비판과 우려를 낳는 데에는 국가안보 중대 사안에 대한 독단적 리더십이 한몫을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회견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같은 조건을 달긴 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그 파장은 나라 안팎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환영했지만 러시아는 적의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한러관계가 수교 30여년 만에 일대 위기를 맞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의 발언이 그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의 손에 있는 것을 볼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며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라고 경고했다. 받은 대로 갚아주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로선 최근까지도 '살상무기 지원 불가'를 거듭 확인했던 한국의 '변심'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기에 잔뜩 격앙된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윤 대통령이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잇단 외교적 실책을 범하는 것에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
교전 중인 국가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초당적 공감대하에 지켜져 온 불문율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섣불리 독단적으로 결정할 성격이 아니다.
더구나 러시아는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며 우리와 적지 않은 경제 협력 관계도 맺고 있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면 사전에 국민적 공감대를 구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내용을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발표 비슷하게, 어쨌든 인터뷰로 이렇게 공개하고 이게 가능한 얘기인가"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번 사안은 20년 전인 2003년 이라크 파병 찬반 논란을 소환한다. 당시 치열한 공방을 불러일으키며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국익을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밟았다.
박병환 전 주러시아대사관 공사는 "이라크 파병은 군대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 놓고 보면 경중 면에서 (무기 지원이) 덜하지 않나 할 수 있는데, 국제관계나 외교적 파장 등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문제가) 훨씬 더 중차대하다"고 말했다.
결국 대통령실은 하루 만에 긴급 진화에 나섰다. 윤 대통령 발언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한발 물러서며 파장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 외교부는 대통령실과의 엇박자 때문에 납득하기 힘든 어색한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국방부는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의 전날 발언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에는 "전혀 다른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윤 대통령과 정부 입장은 바뀐 적이 없는데 대다수 국민과 러시아 정부, 다수 외국언론까지 엉뚱한 오해를 한 셈이 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대통령이라면 최고 외교관으로서 상대에게 내 말이 어떻게 비춰질까, 내 말이 곡해될 여지는 없을까를 생각해서 말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물의를 빚고 오해를 부를 말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외신 회견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한꺼번에 반대편으로 내몰았다. 19일 당일에는 잠잠했던 중국은 다음날 '부용치훼'(不容置喙.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무례한 표현을 동원하며 공세에 나섰다.
이에 우리 외교부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면서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받아쳤다.
한중관계에서 보기 드문 거친 언사들이었다. 북방외교 30여년의 공든 탑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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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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