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최승윤이 도전한 '라이스보이 슬립스' 속 강인한 소영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3. 4. 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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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감독 앤소니 심) 소영 역 배우 최승윤 <상>
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소영 역 배우 최승윤. 판씨네마㈜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아들 동현(어린 동현 황도현/큰 동현 황이든)을 낳았지만, 남편이 자살하는 바람에 아들을 호적에 올릴 수 없게 된 소영은 낯선 땅 캐나다로 떠난다. 그곳에서 소영은 공장에서 일하며 동현과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 아들과 함께여서 행복하고 또 아들과 함께여서 상처받기도 한다.

아시아인이 없는 낯선 직장,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영은 꿋꿋하다. 아들이 인종차별을 받자 태권도의 정신으로 대항하라고 한다. 오히려 동현만 정학당한 게 억울하다. 엄마의 가르침대로 상대 아이를 때린 동현을 위해 엄마는 백인 선생들을 향해 큰소리친다. 소영은 강인했고, 단단했다.

영화에도 나오는 "나는 과거를 존중한다. 우리가 온 곳을 모르면 갈 곳도 모를 테니까"라는 시인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소영은 자신의 불우하고 상처받았던 과거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아들 동현과 함께 과거를 다시 찾아간다. 자신을, 자신이 나아갈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동현이 돌아가야 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소영을 배우 최승윤은 단단하게 그려나갔다. 첫 장편 영화임에도, 첫 주인공임에도 최승윤은 소영을 온 마음으로 품어 차곡차곡 쌓아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냈다. 그런 최승윤의 연기력을 알아본 아프리카 마라케시국제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을 수여했다. 지난 7일 '라이스보이 슬립스' 배급사 판씨네마에서 최승윤을 만났다. 그는 소영처럼 단단했고, 자신이 나아갈 곳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는 인상을 줬다.

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두려움에서 시작해 용기로 다가간 '라이스보이 슬립스'


▷ 첫 장편 영화 데뷔를 앞둔 기분이 어떤가?

아주 아주 많이 긴장된다. 김칫국 마시는 걸 수 있겠지만, 조용하게 사는 건 끝이 난 것일 수 있겠구나 두려운 마음도 있다. 우리 영화가 캐나다 인디영화인데 한국까지 개봉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벅차다.

▷ 장편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아 극을 이끌어 간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사실 연기하면서는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날 하루하루 찍는 신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게 모여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소영이가 메인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사실 촬영하러 가기 전 연기 경험이 없는데 장편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두려웠다. 그런데 준비하는 기간 감독님, PD님, 배우들을 보고 나니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만든다는 걸 느꼈다. 이 팀과 함께라면 잘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만든 픽션 다큐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 때 같이 일했던 수 킴 감독님이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볼 생각이 없냐고 연락하셨다. 호기심이 생겼고, 주변 삶의 흐름이 우연히 기회가 주어지는데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게 됐다.

▷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난 후 감상이 기억나나? 어떤 지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나?

영화가 처음 토론토영화제에서 소개됐을 때는 이민자 소재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내가 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이민자 이야기보다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더 읽혔다. 그 부분에 더 공감이 갔다. 배경이 캐나다일 뿐 사실 주된 이야기는 모자의 관계고, 아들뿐 아니라 엄마도 자신의 정체성, 뿌리,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소영 역 배우 최승윤. 판씨네마㈜ 제공
 

최승윤이 만난 소영은 씩씩하고 강인했다

 
▷ 최승윤이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한 소영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그런 소영을 어떻게 구축해 나갔나?

소영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진짜 씩씩하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이 여자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이유가 이 여자 인생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불행이 아니라, 수많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했던 선택인 거 같다. 수많은 불행에도 소영이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삶을 한탄하기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소영은 항상 해결책을 찾고 씩씩하게 나아갔다. 연기하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유념했다.

▷ 그런 소영의 강인함을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어느 대목인가?

의사를 만나서 암 진단받을 때다. 암에 걸렸다고 하면, 나라면 충격이 너무 커서 너무 극적으로 갈 거 같은데 소영이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케이.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죠?"라며 정신을 다잡고 씩씩하게 해결책을 물어본다. 마음이 아프지만 소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이민자의 영어랄까, 영어 대사의 억양은 어떻게 잡아갔나?

내 억양이다. 해외에서 1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는데, 소영도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캐나다에 살면서 생활 영어로 터득한 실력이 나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했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어 대사는 말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난 이민자니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었기에 오히려 영어 대사가 어렵지 않았다.

▷ 아들에게 남자는 태어나 인생에서 세 번 우는 거라고 말할 때, 마치 소영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그 대사는 어떻게 보면 되게 한국에서는 클리셰라고 할 정도로 되게 많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지 빤하지 않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그걸 찍을 때 동현의 삐뚤어진 안경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실제로 안경을 다시 맞춰줄 때 너무 속상했다. 사고가 난다든지 언제라도 엄마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당부라고 해야 할까. 세련된 가르침은 아니지만 이게 소영의 본능적인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외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남편의 산소를 찾아간 소영이 마치 그간의 세월을 토해내듯 소리 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은 어떤 마음으로 임했을지 궁금하다.

거의 모든 게 원테이크였다. 캐나다에서부터 거의 시간순으로 찍어서, 이미 난 소영이가 되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기까지 소영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한테 쌓여서 올라왔다. 소리치면서 너무 속 시원했다. 이번 생 열심히 잘 살았다, 너무 쉽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아들도 그런 인간적인 엄마의 모습은 처음 봤을 거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솔직한 자기감정을 보여주는 걸 처음 보는 아들의 감정도 되게 복잡했을 거 같다.

▷ 예비 관객을 위해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이런 영화'라고 홍보한다면?

우선 필름으로 찍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영화는 뭔가 극적인 어떤 사건들이 빵빵 터지면서 전개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보게 되는 영화다. 화려한 언변은 없을지라도 한 편의 시를 감상하듯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소현이와 동현이가 살았어요"라며 시작하는 옛날 동화를 들려주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해주시면 좋을 거 같다.(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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