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첨단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중국은 어떻게 패권을 잡았나
전 세계 매장량 중 37%가 중국에 몰려
대체재 개발 연구 많으나 상용화 요원
흔히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비유합니다. 하루종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부터 각종 전자기기, 가전제품, 자동차는 물론 제조현장에서 쓰는 각종 설비까지 반도체 없이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반도체 주도권을 잡는 국가가 곧 산업 주도권을 잡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을 끌어들여 ‘칩4 동맹’이란 이름으로 글로벌 반도체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이유죠.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자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맞대응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바로 ‘희토류’입니다. 중국 상무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은 최근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희토류 정제·가공 기술을 포함시켰습니다. 사실상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에 들어간 것입니다.
반도체에 비하면 희토류는 여전히 생소한 단어입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희토류라는 단어 자체는 자주 소개가 됐지만 정확히 희토류가 어떤 것인지, 어떤 산업 분야에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아는 경우는 적습니다. 한 가지만 확실할 뿐입니다.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에 필적할 중요한 무언가겠구나 하는 느낌이면 충분합니다.
도대체 희토류가 뭘까요. 왜 하필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꽉 쥐고 있는 걸까요. 희토류를 대체할 자원은 없는 걸까요. 서주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회수연구센터장 도움을 받아 알아봤습니다.
◇‘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희토류라는 단어 자체는 ‘땅에서 나는 희귀 광물’을 뜻합니다. 때문에 특정 광물 하나만 지칭하는 게 아니라 여러 광물들을 한꺼번에 희토류라고 칭하죠. 주기율표 기준으로 네오디뮴, 란타넘, 이트륨, 에르븀을 비롯해 총 17개 원소가 희토류에 들어갑니다.
2021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은 1억2000만t 정도입니다. 매장량만 보면 희귀한 게 맞나 싶을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이들은 광산 몇 곳에 집중돼있는 게 아니라 넓은 면적에 골고루 퍼져있습니다. 게다가 농축된 형태로 있는 게 아니라 광석에서 희토류 성분을 추출해 써야 합니다. 상당히 많은 광석을 갈아서 정제해야 비로소 산업 소재로 쓸 수 있는 만큼 희토류가 나오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희토류를 희귀한 광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희토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반도체, 액정디스플레이(LCD) 모니터, 에어컨, 냉장고, 배터리, 전기자동차와 같은 여러 첨단제품들을 만들기 위한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전자제품들 중 희토류가 들어가지 않는 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 여러 분야에서 희토류 수요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런 이유로 희토류는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립니다.
◇중국은 어떻게 희토류를 장악했나
중국에는 희토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묻혀있습니다. 전 세계에 묻혀있는 희토류 1억2000만t 중 중국에 4400만t(37%)이 매장돼있습니다. 그 뒤로 베트남에 2200만t(18.3%), 러시아에 2100만t(17.5%), 브라질에 2100만t(17.5%)과 같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180만t이 매장돼있지만 이는 전 세계 1.5% 수준으로 적습니다.
매장량이 많다는 것 하나로 중국이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 된 건 아닙니다. 희토류 생산을 위해서는 환경오염에 대한 국민들 반발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정부가 강한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합니다. 희토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생산 과정은 희토류 성분을 품은 광석을 캐는 채굴, 광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 없애는 선광, 희토류 성분만을 뽑아내는 정제까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이 중 선광 공정에서는 비산먼지, 방사성함유물질, 중금속이 나옵니다. 정제공정에서는 유해가스, 중금속, 각종 폐수, 광물 찌꺼기가 발생합니다.
국제전략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희토류 1t을 뽑는 과정에서 황산이 포함된 독성가스 6만3000㎥, 산성폐수 20만L가 발생합니다. 이밖에도 암모늄이온, 황산염이온, 인산염이온, 불소이온, 중금속아연, 카드뮴, 납과 같은 물질이 섞인 독성 폐수가 나옵니다.
희토류 생산에 따른 환경오염이 심각한 탓에 선진국들은 자국 내 희토류 생산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생산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희토류를 쓰는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죠. 그 결과 중국산 희토류로 수요가 몰리면서 중국이 전 세계를 위한 희토류 공장이 된 것입니다.
◇희토류, 전기차와 함께 절대적 위상을 얻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자동차 8063만대 중 802만대가 전기차였습니다. 작년에 판매된 차 10대 중 1대는 전기차였다는 것이죠. 전년에 비해 판매량이 68%나 늘었습니다.
희토류가 산업계에서 지닌 위상은 전기차와 함께 공고해졌습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전기모터를 만드는 데 테르븀(Tb), 디스프로슘(Dy),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과 같은 희토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전기모터 핵심 부품인 ‘영구자석’의 원료가 됩니다. 영구자석은 한 번 생긴 자기력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자석입니다.
영구자석은 전기모터 중심부에 들어가 자석을 회전시켜 모터를 작동시키는 핵심 부품입니다. 영구자석 주변에는 다른 자석들이 회전축처럼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자석의 N극과 S극이 같은 극은 밀어내고 다른 극은 당기는 힘이 작용하면 회전축이 고속으로 회전합니다. 그렇게 만든 에너지로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겁니다.
전기차용 모터의 성능은 결국 영구자석이 얼마나 강력한 자성을 뿜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희토류 만큼 자성이 강력함과 동시에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을 만큼 가공이 용이한 광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판매량은 오르고 유럽연합(EU)은 2035년 이후 내연기관 퇴출을 계획 중입니다. 희토류가 점점 더 귀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희토류는 대체될 수 있을까
희토류 대체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는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말 영국 케임브리지대 린지 그리어 재료과학및금속공학과 교수는 운석에서 발견되는 물질인 ‘테트라테나이트’를 지구에서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성과가 담긴 논문은 국제 학술지 ‘어드밴드스 사이언스’에 게재되기도 했죠.
테트라테나이트는 뜨거웠던 운석이 천천히 식으면서 자성을 갖게 된 물질로 ‘우주 자석’이라 불립니다. 운석에 섞여있는 철과 니켈이 우주를 떠도는 오랜 기간동안 특정 순서로 배열되면서 만들어집니다. 테트라테나이트는 희토류로 만든 영구 자석과 성질이 거의 같기도 합니다.
연구팀은 철과 니켈로 만든 합금에 동물 뼈, 치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성분인 ‘인’을 첨가해 테트라테나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운석에서 테트라테나이트가 만들어지려면 수백만년이 필요한데 이를 몇 초 만에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나온 것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테트라테나이트로 영구 자석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직 상용화는 요원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죠.
전문가 의견도 비슷합니다. 서 센터장은 “희토류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성과는 오랜 기간 여럿 접했지만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됐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며 “희토류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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