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책임 다하지 않은 이들이 만든 '참사'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그날의 폭발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2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8cm가 부른 죽음 -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이라는 부제로 1995년의 그날을 조명했다.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30분, 대구 상인동의 상인네거리에는 지하철 공사와 백화점 공사가 한창이었다. 백화점 건설 현장에서 진행 중이던 천공 작업, 그런데 이때 천공기 기사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드릴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코를 찌르는 냄새가 올라왔다. 바로 천공기의 드릴이 땅 속에 파묻혀있던 가스관을 건드린 것. 이에 현장에서는 급히 도시가스 회사로 신고를 했다.
그 시각 거리에는 등교와 출근을 위해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가득했다. 집안의 보물이었던 영남중 2학년 창윤이와 엄마 껌딱지 지한이도 바로 그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에 오른 영남중 1학년 우진이는 눈앞에서 끔찍한 광경을 마주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던 것.
7시 52분, 가스관이 파손된 지 단 20분 만에 벌어진 폭발이었다. 이 사건은 바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스관이 파손된 백화점 건설 현장이 아닌 지하철 공사장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일까? 지하의 중압관을 8cm 파손시켜 유출된 가스는 살아있는 듯 움직였고, 이 가스는 다시 20cm가량 파손된 우수관으로 흘러들어 가고 이것은 하수관을 타고 흘러 지하철 공사장까지 가서 연쇄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지하철 공사장에는 하나당 무게가 280kg에 달하는 복공판이 빽빽하게 깔려있었는데 이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 복공판은 종잇장처럼 한꺼번에 튀어 올랐다. 이에 그 위에 있던 차와 사람들까지도 모두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 복공판이 튀어 올라 사라진 자리에는 구멍들이 생겼고, 그렇게 튀어 오른 사람들은 15미터 아래 구멍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부모님들은 서둘러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학교에 없는 아이를 찾기 위해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뒤지고 다녔다.
당시 제대로 된 실시간 보도 대신 자막 뉴스로만 처리되어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TV에는 뉴스 속보 대신 고교 야구 중계가 전파를 탔고, 이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가족을 찾는 사람들은 병원으로 영안실로 그렇게 찾아다녀야 했고, 지한의 어머니와 창윤의 아버지는 병원 영안실에서 그토록 찾던 아들의 주검을 만났다.
이 참사로 사망한 이는 101명, 부상자도 200여 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 10대가 51명, 그중 43명이 모두 영남중 학생들이었다. 영남 중학교에서는 학생 43명과 교사 1명이 이 사고로 사망했는데, 이에 사람들은 한 학급이 하늘로 함께 떠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했던 우진 씨는 하늘로 간 친구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분향소를 오갈 때마다 들려왔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이에 그는 이 노래만 들으면 향 냄새가 난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천공 공사를 진행할 때는 가스관이 묻혀있다는 라인 마크를 잘 확인하고 작업 전에는 주변을 파서 직접 매설울을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던 관계자들은 눈으로 대충 어림잡아 천공 작업을 할 위치를 정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지 않은 대가는 너무나 컸다.
원칙을 지키고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 또한 당시 천공기 기사가 드릴을 들어 올리지 않았거나 폭발이 일어나기 전 차량과 시민들의 통행을 통제했다면 사고의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후 사고의 책임자들인 천공 작업 하청 업체, 백화점 공사 관계자는 처벌을 받았다. 최고 형량 징역 5년 형을 받은 이들. 수 백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음에도 이 마저도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에 상고를 거듭한 최종 판결이 이 같은 결과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도시가스 안전관리 시스템 개혁되었고, 매설물들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지하 지도가 생겼다. 하지만 항상 큰일이 벌어진 후에야 만들어지는 대책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고 후 창윤이의 아버지는 유족 몇 명과 함께 건설 회사를 만들었다. 부실 공사가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유족들이 세운 회사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 때문에 공사 수주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결국 이 회사는 대구 가스 폭발 참사 추모 위령탑의 건설을 마치고 문을 닫아야 했다.
희생자 101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위령탑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한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을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매주 청소를 하러 방문한다고 밝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까지 불과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난 참사들이다. 이에 혹자들은 같은 사건이 거듭되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말해서 무엇하나 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 같은 일들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조금이라도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모두 책임을 다 한다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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