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제주에서, 책으로 불어오는 어떤 바람

한겨레 2023. 4.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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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좋아했다.

'그럼 어쩐다 나는 책방 있는 마을에 살고 싶은데, 책방은 없고.' 한참의 궁리 끝에 다다른 결론은, '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 그럼 내가 하자, 책방. 그럼 이 마을은 책방을 가지게 되고, 나는 책방 있는 마을에 살게 되는 거지.' 이것이 '어떤바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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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 │ 어떤바람
책방 어떤바람 외부 모습.

제주를 좋아했다. 여행지로서의 제주.

10년 전, 한달살이를 하러 온 제주에서 자연은 마음껏 누렸지만, 서점은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이들 코너에, 나는 어른 코너에. 각자 마음에 드는 책 한권씩을 골라 든든하게 챙겨 나오는 뿌듯함을 누릴 수 없다니! 나는 ‘에이, 누가 제주에 와서 살라고 하면, 책방이 없어서 못 살겠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보니 책방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마을에 내려와 삶을 일구게 되었다. ‘그럼 어쩐다… 나는 책방 있는 마을에 살고 싶은데, 책방은 없고….’ 한참의 궁리 끝에 다다른 결론은, ‘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 그럼 내가 하자, 책방. 그럼 이 마을은 책방을 가지게 되고, 나는 책방 있는 마을에 살게 되는 거지.’ 이것이 ‘어떤바람’의 시작이다.

서점을 꾸리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 무엇보다 책과 사람을 잇고, 책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세상을 잇는 그런 모습을. 하지만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꾸린다는 것은 뭘 모르는 사람의 무모한 용기다.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책방지기의 역할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서점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을에 의미 있는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날밤을 새우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나는 책을 파는 상업인인가, 작은 마을의 문화활동가인가. 작은 책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서점을 경제적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책방에서 책이 팔려야 책방도 운영하고 운영자도 먹고산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며,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해서 좋아하며 하고 싶다. 그래야 개발의 광풍에 휩싸인 제주에서 오래도록 서점이라는 존재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으니.

그렇다면 어떤바람은 어떤 서점이 되고 싶은가? 남녀노소동물, 이 땅의 어떤 생명체든 쉼을 얻어 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바람 피할 피난처, 잠시 쉬었다 숨 고르고 갈 수 있는 공간, 나를 돌아볼 질문들을 얻어 가는 곳, 내 생각과 마음이 더 깊어지고 확장되도록 내가 미처 듣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려주는 곳. 바로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책을 읽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다, 그래 좋다, 바로 이거라며 함께 재미난 일을 궁리하는 곳, 그러다 어떤 작당이 일어나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곳.

그래서 오늘도 책방 어떤바람은 동명의 노래 가사처럼 ‘어떤 바람’이라는 공간을 지나, 책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각자 ‘어떤 바람’으로 존재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문을 연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
꽃에 불면 꽃바람 되고요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호시노 도미히로 시, 홍순관 개사·노래)
제주/글·사진 김세희 어떤바람 책방지기

어떤바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374 (사계리)
instagram.com/jeju.windybooks
책방 어떤바람 외부 모습.
책방 어떤바람 내부 모습.
책방 어떤바람 내부 모습.
책방 어떤바람 내부 모습.
책방 어떤바람 행사 모습.
책방 어떤바람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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