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장수가 전투하듯 책을 읽으라”

고명섭 2023. 4. 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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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
2500년 독서 잠언의 집대성
공자·주희 외 지음, 장밍런 엮음, 김명환·김동건 옮김 l 글항아리 l 3만8000원

<독경>(讀經)은 중국 역대 지식인들이 독서와 배움에 관해 저작이나 편지를 통해 한 발언을 모은 책이다. 춘추시대 공자에서 시작해 청나라 말기 주일신까지 292명의 말이 800쪽 가까운 지면을 빽빽이 채운다. 역대 중국의 문인·학자 가운데 이름이 났다 하는 사람은 거의 다 모인 셈이다. 책을 엮은 장밍런은 어려서 부친을 따라 중국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한 뒤 오랫동안 교육에 종사한 사람이다. 엮은이는 주관적인 논평을 일절 배제하고 인물들의 발언 자체를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했다. 국문학자 김명환·김동건 박사가 정갈한 우리말로 옮겼다.

독서와 배움에 관해서라면 공자의 발언이 가장 유명한데, 이 책도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논어>의 첫 구절에서 시작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발언과 달리 공자의 발언에는 후대 학자들의 해설을 덧붙였다. 같은 발언이라도 흔히 새기는 방식과는 다르게 새겨 눈길을 끄는 것도 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를 이 책은 “이전에 들은 것을 반복해 익히고 새로운 것을 깨치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옮겼다. ‘온고이지신’을 독서와 배움의 방법으로 해석했는데, 이런 해석을 주희(주자)가 내놓았음을 ‘해설’에서 알아볼 수 있다. 이 문장을 놓고 주희는 “온(溫)은 ‘거듭 복습한다’는 뜻이고, 고(故)라는 것은 ‘예전에 들어 아는 것’이며, 신(新)이란 것은 ‘지금 깨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이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는 사람은 남송시대에 신유학을 세운 주희다. 근면하게 학문을 연마해 유학을 혁신한 대사상가답게 주희의 발언에는 그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독서와 배움의 방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책읽기를 약 처방에 빗대는 대목이 그렇다. “읽는 책이 너무 많은 것은, 마치 사람이 큰 병에 걸려 침상에 있는데 여러 의원이 번거롭게 나와서 온갖 약을 처방해도 결국 효험을 보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차라리 하나의 책에 온 힘을 기울여 반복해서 읽어 통달한 후에, 다시 다른 책으로 바꿔서 공부하는 것이 낫다.” 책의 내용을 예단하고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도 있다. “요즘 학자들을 보니 대부분이 먼저 자신의 견해를 세우고, 경문과 부합하는지의 형세를 따지지 않고서 제멋대로 의리를 가져다 붙입니다. 이와 같다면 다만 자신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책을 쓰면 되는데, 어째서 반드시 옛 성현의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까?”

주희가 얼마나 독서에 몸과 마음을 바쳤는지 보여주는 발언도 있다. “배울 때는 매우 절실하고 정성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굶주려도 먹는 것을 잊고 목말라도 물 마시는 것을 잊을 정도로 노력해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배움을 용기와 연관시키는 구절도 있다. “배우려 할 때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은 단지 용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이 난관을 뚫으려면 용감하게 도약하는 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도약을 하려면, 끈질기게 파고드는 것이 필요하다. “배우는 것은 배를 저어서 상류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평온한 곳을 만나서는 편리한 대로 가도 무방하지만, 여울이 심한 급류에 이르면 사공은 삿대질을 놓아버리거나 늦추어서는 안 된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배를 저어 올라가야지 한 번이라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한 번이라도 놓고 물러나면 이 배는 거슬러 오를 수 없을 것이다.” 독서를 전투와 신문에 비유하는 발언은 생생하다. “글을 볼 때는 마치 용맹한 장수가 군대를 운용할 때처럼 한바탕 격렬하게 싸우듯이 하고, 매우 깐깐한 관리가 사건을 심리할 때 끝까지 죄인을 신문하듯 해서 결코 상대를 용서하지 않을 듯이 해야만 글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깊이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방법적 회의주의’를 이야기하는 대목도 있다. “사람들의 병폐는 다른 사람들의 설은 의심할 줄 알면서 자신의 설은 의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다른 사람을 비판한 것을 가지고 자신을 비판해보면 아마도 그 장단점이 절로 드러날 것이다.” 이런 발언들은 주희가 수사관이 수사하듯 책을 정밀하게 읽고 장수가 전투를 치르듯 책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갔으며, 그렇게 얻은 생각을 스스로 의심해 검증함으로써 새로운 사상을 구축했음을 알려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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