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방의 식사, 공동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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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내 식품영양학 관련 학술지에 도농간 노인의 식생활 행태와 영양 섭취 상태를 비교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배추김치·밥·된장찌개·커피는 도시노인이나 농촌노인 모두 자주 섭취하는 음식으로 조사됐다.
다만 농촌노인은 도시노인에 비해 물·당류·과실류·유제품의 섭취량이 적다고 보고됐다.
집 주변에 식료품 가게나 음식점이 없는 농촌노인들의 밥상에는 주로 텃밭 채소로 꾸린 음식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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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내 식품영양학 관련 학술지에 도농간 노인의 식생활 행태와 영양 섭취 상태를 비교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배추김치·밥·된장찌개·커피는 도시노인이나 농촌노인 모두 자주 섭취하는 음식으로 조사됐다. 다만 농촌노인은 도시노인에 비해 물·당류·과실류·유제품의 섭취량이 적다고 보고됐다. 집 주변에 식료품 가게나 음식점이 없는 농촌노인들의 밥상에는 주로 텃밭 채소로 꾸린 음식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고령이 될수록 균형 잡힌 식단으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노인성 질병을 예방해야 하는데, 이런 식단은 의학적 관점에서 불균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노인이 혼자 살 때가 가족과 함께 살 때보다 영양소 섭취가 양적·질적으로 모두 부족하다는 결과였다. 특히 여성 홀몸어르신의 영양 섭취가 남성 홀몸어르신보다 현저히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두드러졌다. 그동안 시부모와 자녀, 그리고 남편까지 가족의 밥상을 두루 책임졌던 여성 노인들에게 정작 ‘자기만의 밥상’은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미지의 세계일 것이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저서 <정치적인 식탁>에서 가사노동자인 여성 주부가 가족 없이 혼자 먹는 밥은 외로운 식사가 아니라 ‘해방의 식사’에 가깝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최근 면 소재 경로당에서 여성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세번 행복도우미가 오는 날 경로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그 외는 각자 집에서 식사한다고 말씀하셨다. 행복도우미 제도가 없던 때에는 경로당에 있는 노인 가운데 더 젊은 노인이 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젊은 노인이라 해도 80대 초반이다.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기에는 서로 불편한 처지가 된 노인들은 혼자 먹는 밥을 선택한 듯하다. 가족으로부터도, 더 나이 든 이웃으로부터도 해방된 식사이긴 한데, 그 식사는 초라하고 외로워 보였다.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삼시세끼를 거르지는 않지만 “먹어야 하니까 먹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 먹으면 대충대충 먹고 아무래도 맛이 없어. 반찬이 없어도 여기 와서 먹으면 젓갈에다가 먹어도 밥이 맛나”라고 하신 말씀이 귀에 맴돈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에는 “제대로 먹지 못하면 사람은 제대로 생각할 수도, 제대로 사랑할 수도, 제대로 잘 수도 없다”는 문장이 있다. 제대로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시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는 영양사·조리사·사회복지사의 관리 아래 주 5회 위생적이고 균형 잡힌 점심을 공동급식 프로그램으로 제공한다. 이와 비교했을 때 복지관이 없는 농촌은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따라서 농촌마을에 사는 노인들의 식사문제는 지금보다 더 공적으로 세심하게 고안돼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로당에 쌀과 부식비를 제공하다가 이제 행복도우미도 파견한다. 하지만 식료품을 마트에서 구매하고 회계보고 등 각종 행정처리 업무까지 도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은 대체로 그 마을 부녀회장의 봉사로 이뤄진다고 한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평등한 밥상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한 식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제대로 먹은 밥 때문에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자는 것’. 이는 삶의 질을 책임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밥이 보약이고, 밥이 복지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살피는 데서부터 농촌의 노인복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란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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