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문명이라는 울타리 너머의 세로와 벵가

유강하 2023. 4.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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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미족 청년·얼룩말 가둔 건 인간의 야만적 위계
전세계 이목 끈 동물원 탈주극
탈출 이유 사람 시각으로 해석
실제론 울타리 갇힌 현실 외면
과거 서구서 인간동물원 실존
원시부족인 생활 구경거리 돼
이후 풀려났지만 극단적 선택
본래 삶 빼앗기고 전시된 그들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에 갇혀

아무튼, 지난 달 동물원 울타리를 뛰어넘었던 얼룩말 세로는 무사히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세로는 동물원을 탈출하여 서울 시내 도심과 골목을 활보하다가, 세 시간 만에 마취총 일곱대를 맞고 쓰러졌다. 탈주의 모험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세로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세로의 탈주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유저들이 공유하는 인기 동영상이 되었다. 혹자는 세로가 순식간에‘글로벌 스타’가 되었다고 했지만, 그 평가는 세로에게 큰 의미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평가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준에 근거한 것이니 말이다.

세로가 도대체 왜 탈출했는가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세로의 부모였던 루루와 가로가 죽고, 혼자 남겨진 외로운 세로가 친구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일차적인 분석이 있었다. 이웃 울타리의 캥거루가 친구로 상대해주지 않자 외로움이 커졌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고, 이 분석을 뒷받침할 만한 동영상 자료도 제공되었다. 사람들은 “조실부모”한 세 살의 “외로운” 사춘기의 세로가 “반항”하느라 “가출”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당근 간식을 내미는 사육사의 친절함, 동물원의 배려에 안심했다. 그래서 곧 “여자친구”를 만들어줄 거라는 관계자의 대안에 또 다시 안도했을 것이다.

세로를 설명하기 위해 덧붙여진 단어들, ‘조실부모, 사춘기, 반항, 가출, 삐침, 여자친구’ 등의 용어는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묘사는 세로를 사람과 같은 위치에 두고 대우해주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현실은 매우 다르다. 세로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가장 큰 차이는 그 외모가 아니라, 생(生)의 형태에 있다. 아마도 세로는 큰일이 없다면 그 부모처럼 동물원에서 생을 마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로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들었을 때, 걱정부터 들었다. 그 얼룩말 여자친구는 어떤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다가 단지 운이 나빠서 포획되어 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자친구가 생긴 ‘한 쌍의 얼룩말 커플’의 탄생을 축하며 기쁘게 바라보게 되겠지만, 얼룩말의 입장에서 보자면 죽을 때까지 좁은 울타리에 갇혀 사는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비극이 있을 뿐이다.

세로와 그 미래를 상상하자, 죽은 물고기를 먹이로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돌고래들이 생각났다.(“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남종영) 제주남방큰돌고래인 복순이와 태산이는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갔지만, 복순이나 태산이처럼 주목을 받지 못한 돌고래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폐사되거나, 아쿠아리움을 근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죽을 때까지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단지 운이 나빠서 동물원에 수용되었을 동물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백여 년 전에 살아있는 채로 전시되었던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겹쳐지며 떠오른다. 백여 년 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한 세계박람회에서는 자동차와 새로운 기계, 그리고 원시적인 삶을 영위하는 부족민들이 나란히 전시되었다. 그들은 모델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동물원 속 동물들이 그런 것처럼, 전시관 안에서 요리하고 먹고 마시며 잠드는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일상은 흥미로운 전시 품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문명을 자랑하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던 문화현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노골적인 위계와 차별, 잘 차려입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관람하는 것은 ‘문명’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한번 그어진 위계는 공고해지고 학습되면서,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문명의 세계에 안착했다.

한 피그미족 남성인 오타 벵가도 오랫동안 전시의 대상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곳에 서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던 벵가에게도 전시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집’이었다. 벵가가 느꼈을 수치심과 모멸감, 고통은 맛있는 음식 하나로 달래질 수 있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초원에서 달려야 할 세로, 원시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벵가는 ‘문명’이라는 수식어의 야만에 갇혀 있었고, 여전히 갇혀 있다. 벵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 전시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나,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세로와 벵가는 울타리 너머에 있다. ‘문명’의 이름으로 만든 울타리는 낮고 가볍지만, 도무지 뛰어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야만은 울타리 안쪽이 아니라, 울타리 바깥쪽에 있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세련된 탈을 쓰고서.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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