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이창용 총재, 물가·금융안정 두마리 토끼 잡기 숙제
통화긴축기 중앙은행 역할 방향성 고민
경제성장률 낮고 물가상승률 여전히 높아
물가안정-금융안정 상충.. 고민 깊어져
"한은寺는 옛말" 적극적 소통은 높은 평가
임기 내 K-점도표 방식 등 구체화할 예정
설화 리스크 극복, 내부경영 혁신은 '과제'
[파이낸셜뉴스] 21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와 금융안정 두 마리 토끼 잡기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통화긴축 과정에서 물가안정과 경제성장·금융안정이 상충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대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가운데 물가도 3%대로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치를 상회할 전망이라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이른바 '한은사(寺)'에서 탈피, 통화정책 관련 적극적 소통이 이 총재의 취임 첫 해 특징적인 성과로 꼽히는 반면, 임직원 임금 문제 등 내부경영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 총재 취임 1년을 맞아 한국은행에서는 그간 성과를 짚어보고 향후 통화정책, 내부경영 방향을 재정립할 예정이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물가안정 뿐 아니라 경기부양, 금융안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금융통화위원 5명 중 2명 또한 마침 교체된다.
임기를 마친 주상영 금통위원은 이임사를 통해 "물가안정과 성장,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의 (단기적) 상충관계가 첨예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 상황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책무로 하되, 경제성장 지원과 금융안정에 기여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밸런스 잡기'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지난 11일 금통위 통화정책결정방향 결정회의에서 통화긴축기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 해외 사례 보고와 논의가 이뤄지는 등 한국은행에서도 역할 정립에 나섰다.
현재 경제·금융 상황은 녹록지 않다. 외국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 초반으로 낮췄고, 한은 또한 지난 금통위에서 성장률이 당초 전망(1.6%)보다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로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치(2%)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예상보다 더디게 잡힐 전망이다.
외환은 지난해 10월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급등한 후 올해 들어 1200원대까지 안정됐지만, 대외 여건 불확실성으로 변동폭이 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금융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리스크, 전반적 가계부채 문제 등 불안 요인이 잠재돼 있다.
지난 1년간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관련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행 노조가 조합원 1002명을 대상으로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한 이 총재 취임 1주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관련 평가에 응답자 84%가 각각 긍정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6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3%p 올린 후 지난 2월과 이번달 금통위 두 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통화긴축기 변곡점을 맞은 만큼 향후 대응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대표적 성과로 꼽히는 적극적 소통 또한 보완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총재는 "시끄러운 한은"을 내걸고 대내외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간 기준금리 전망(포워드 가이던스)을 공개해왔다. 전략적 모호성을 탈피해, 금통위의 생각을 알리고 투명하게 소통하자는 취지다.
이 총재는 임기 내 금통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K-점도표' 내용과 방식을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경제모형실이 신설된 것 또한 K-점도표 구체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은 내부적으로도 수평적이고 외부지향적 조직문화를 지향하고 소통 채널을 다양화해왔다. 금통위원과 임직원이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주간현안포럼',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미팅', 총재와 직원 간 직접 소통을 도모하는 '총재와의 점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6월 창립 72주년 기념사에서 "서로 존중하면서도 업무에 관한 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조직내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조사역이 저와의 점심 자리에서 '지난번 총재님 연설문은 실망스러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경직된 위계질서를 없애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서도 디지털 뱅크런 리스크, 부동산 시장 연착륙 전망을 밝히는 등 이 총재의 의견 개진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디지털 뱅크런이 일어나면 그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하는 등 지나치게 과감한 발언으로 외려 시장 우려나 혼란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또한 금통위의 최종금리 전망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다가 전망이 수정되는 경우 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총재의 또 다른 숙제는 내부경영 혁신이다.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이 총재 취임 이후 국내외에서 한은 위상이 이전보다 올라가고 통화정책, 금융안정 부문에서 총재의 업무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내부경영 측면에서 평가는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한국은행 경영층은 직원들에게 '한국경제의 컨트롤타워'급 능력을 요구하지만 임금 수준은 금융공기업 바닥을 강요한다"며 "중앙은행이라는 기관 특성상 근속연수로 인해 평균의 함정에 빠져 젊은 직원들은 금융공기업 평균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조 설문조사 결과 이 총재 취임 후 급여수준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됐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48%, 매우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45%로 전체 93%에 달했다. 한은 인건비 승인권한을 현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로 옮겨야 한다는 응답은 79%였다. 전반적인 업무실적에 대한 부정평가는 9%인 반면, 내부경영에 대한 부정평가는 46%로 차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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