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이창용…소통 합격점이지만 통화정책 고민 커질듯
기사내용 요약
이창용식 'K 점도표'로 통화정책 예측 높여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그동안의 한은 총재와는 달리 경제·금융 당국 수장들과 소통을 강화하면서,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미국의 통화정책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경기 침체를 막고 물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복합적인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1일 공식 취임한 이 총재는 이날로 재임 1년을 맞는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조직 혁신에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8년 동안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를 한은에 접목시켰다. 우선,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을 주제로 한은 구성원들이 토론하는 '주간업무포럼'을 진행했다. '서베일런스 미팅'을 벤치마킹 한 것으로 팀장급 이상 한은 직원은 모두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창립기념일 기념사에서 "구성원 간 소통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어느 직급이든 격의 없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총재가 외부와의 소통 강화를 위해 공들이고 있다는 점을 방증 하는 것 중 하나는 홈페이지 내에 공식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이는 IMF의 블로그 운영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일반인 대상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은은 해당 블로그에 국장, 과장 등 임직원이 금융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콘텐츠를 게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운영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52건의 글이 올라왔다. 특히 금통위 이후 한은이 왜 금리를 동결하고, 빅스텝을 단행했는지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거나, 향후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총재는 정부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도 중점을 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재정·금융 당국 수장들과 수 차례 회동했다. 통화정책 결정을 앞두고 만남이 이뤄진 경우도 많아, 일각에서는 통화 당국을 압박하기 위한 만남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급격하게 번지자 정부와 협력을 통해 유동성 대책을 내 놓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 힘썼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금경색이 우려되자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고, 금융권에 자금을 공급할 때 담보로 받는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추가하는 등 적극적이 대책을 내놨다.
또 지난해 9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치솟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외환시장 안정에 힘을 쓰기도 했다.
반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간 엇박자 논란도 일었다. 한은은 금리를 올려 물가 상승을 막으려 하는데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시중은행들에 대출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기 때문이다.
통화당국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화법으로 환율과 국채 금리가 급등락 하는 등 변동성을 키워 외환시장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는 오점도 남겼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취임후 출입기자들과의 첫 차담회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원화 절하폭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서는 크지않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에서 원화 가치 추가 절하를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환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더군다나 이날은 기획재정부의 구두개입성 발언이 있던 날이었다.
또 지난해 5월에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첫 회동에서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한 후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당시만해도 빅스텝 가능성이 낮았던 때였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 "물가 안정만 보면서 독립성을 강조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달라졌다"먀 "정부와 대화를 통해 정책을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열린 방송기자 초청 TV 토론회에서도 "정부와 적극 적극 소통하고 정책 수입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부와의 공조 필요성을 언급했다.
취임 이후 단행한 인사도 기존 관행과 예측을 깼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첫 인사로 이종렬 금융결제국장을 부총재보로 승진발탁했다. 비(非) 통화정책 부서장이 부총재보로 승진한 것은 한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지난해 5월과 7월, 8월, 10월, 11월과 올해 1월, 2월, 4월 일곱 차례의 금통위를 주재하면서 가준금리를 모두 2.0%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7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도 단행했다.
이 총재는 과거 한은 총재들의 다소 모호한 표현과 달리 명확하고 직설적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해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최종금리 전망을 알 수 있는 'K 점도표'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열린 기자단담회에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기준금리를 3.75%로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고, 1명은 3.5%로 동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한 것은 물가가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산유국의 추가 감산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과 공공요금 인상 시기 등으로 하반기 물가에 미치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 총재가 미 연준의 점도표 처럼 이창용식 'K 점도표;를 제시하는 등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을 줄여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과거 어느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상황에서 시장 혼란을 더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소통 행보에 한은의 대외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의 중앙은행 수장들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한은의 존재감도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은 직원들도 이 총재의 통화정책 수행 관련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은 노동조합은 '이창용 총재 취임 1주년 설문 결과'에서 "이 총재 취임 이후 국내외에서의 한은의 위상은 이전보다 올라갔음을 체감하고 있으며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 부문에서 총재의 업무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총재의 학식과 전문성, 국제경영 흐름에 대한 이해도, 탁월한 대외 교섭력 등이 종합된 결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국가들의 성장세 약화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률, 부동산 시장 둔화 우려, 금융 불안 심화 등 물가와 금융안정 상충이 심화되고 있는 국면에서 과거 어느때보다 통화정책 운영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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