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메시지’ [Weekend 문화]
20세기 미술 거장 국내 첫 개인전
드로잉·판화·유화 등 270여점 전시
서울시립미술관서 8월 20일까지
20일 서울시립미술관에 따르면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전은 이날부터 오는 8월 20일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한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작가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충실히 조망했다.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지역, 케이프코드 등 에드워드 호퍼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작품의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이 한자리에서 소개됐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파리에서 거주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1900년대 초 초기 작품들이 눈에 띈다. 파리의 노동자, 매춘부, 걷고 있는 여인, 카페의 중년 남성 등의 행동거지 및 표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인간의 삶이 파리라는 대도시의 문명 속에 묻히지 않고 문명을 배경으로 한 인간 중심의 그림들이 주를 이루는 듯 했다. 특히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행동에 따라 고뇌와 기쁨, 슬픔 등이 투영된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유화로 그린 '밤의 창문'이란 작품을 통해서도 대도시 건물 위주의 그림이 아닌, 창문 안 시민의 행동을 유심히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를 흠모한 조너선 샌틀로퍼 작가는 '밤의 창문'을 놓고 성폭행 당한 동생의 복수를 감행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소설을 그리기도 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판화와 수채화 등을 통해 문명과 자연, 문명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작품들을 대거 내놓는다. 2층 전시실에는 그가 남긴 뉴욕의 풍경화들이 주를 이룬다.
'극장의 고독한 인물'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 외로움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황혼의 집' 등으로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한 작품들도 돋보인다. 문명은 인간과 자연을 가두고 억압하는 게 아닌, 철저히 인간과 자연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작품 '황혼의 집'에서는 방안의 여성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숲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관람자로 하여금 도시의 사적인 영역을 상상하게 하고 그 안에 내포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호퍼는 사회적,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삶을 관찰해 담아내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에드워드 호퍼는 자연 풍경화에도 공을 들였는데,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새롭게 그려진 게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 '철길의 석양'은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인 것 같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인 것이다. 호퍼 부부는 미국 전역 등 여행을 자주 갔는데, 여정 중 길 위에서 얻은 인상이 기억에 남아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전시실 마지막 층인 1층에는 주로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 조세핀 호퍼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이나 수채화, 습작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아내를 모델 삼아 작품 속 여성을 그려왔다.
특히 '햇빛 속의 여인'을 통해 아내의 나체와 포즈를 그려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중 하나가 탄생했다. 작품에서 햇빛이 아내를 비춰 밝은 느낌을 주지만 침대 아래 검은 하이힐 구두와 담배는 그늘짐을 불러일으킨다.
이승아 학예 연구사는 "세계 최대 규모 소장품과 기록을 가진 휴트니미술관과 협업을 통해 연구적 측면에서 깊이가 더해졌다"며 "에드워드 호퍼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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