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고비끝 건립된 ‘추모의 벽’, 한미동맹 상징으로
손효주 기자 2023. 4. 2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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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고 윌리엄 웨버 대령(1925∼2022)을 중심으로 한 미군 참전용사들이 추모의 벽 건립을 미국 의회에 처음 제안한 지 12년 만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추모의 벽은 정전협정 69주년이자 한미동맹 69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7월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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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70년]동맹-정전 70년
미국 내 참전 기념시설 중 최초로
美 국적 아닌 ‘韓전사자’ 이름 새겨
양국 동맹 강고함과 깊은 인연 담아
미국 내 참전 기념시설 중 최초로
美 국적 아닌 ‘韓전사자’ 이름 새겨
양국 동맹 강고함과 깊은 인연 담아
지난해 7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이 6·25전쟁 당시 한미가 함께 흘린 피로 맺은 혈맹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가 열렸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한국인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4만3808명의 이름을 검은 화강암에 빼곡히 새겨 넣은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제막식이 열린 것.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고 윌리엄 웨버 대령(1925∼2022)을 중심으로 한 미군 참전용사들이 추모의 벽 건립을 미국 의회에 처음 제안한 지 12년 만이었다.
추모의 벽은 공원 내 기존 연못인 ‘기억의 못’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건립됐다. 둘레 130m, 높이 1m의 거대한 벽에 이름이 각인된 영웅 한 명 한 명은 그 자체로 한미동맹의 주인공들이었다. 전사자 이름은 추모의 벽을 구성하는 화강암 판 100개에 군별, 계급, 알파벳 순으로 각인됐다. 특히 전체 이름 중 이등병과 일병 이름만 53개 판에 걸쳐 각인됐다. 6·25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청년이 전사했는지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추모의 벽은 미국 내 참전 관련 기념시설 중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전사자 이름을 새겨 넣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한미동맹의 강고함과 양국의 깊은 인연을 담고 있는 조형물인 것.
추모의 벽 건립은 미군 참전용사들이 최초로 제안한 후 6년이 더 지난 2016년 10월 미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법이 통과되며 본격화됐다. 이에 앞서 웨버 대령은 2015년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총 28시간에 걸쳐 6·25전쟁 미군 전사자 3만6000여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호명식을 주도했다.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것과 동시에 추모의 벽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2016년에도 그는 6시간에 걸쳐 카투사 장병 7000여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3월 24일 열린 제8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천안함 피격 산화자 등 서해 용사 55명의 이름을 직접 부른 것도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호명식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추모의 벽은 법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도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여러 번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필요 예산 274억 원 중 국가보훈처가 266억 원을 지원했다. 나머지는 건립 사업 주체인 미국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KWVMF)과 한국 재향군인회 등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추모의 벽은 정전협정 69주년이자 한미동맹 69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7월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백악관에서 불과 직선 거리로 1.4km 떨어진 위치에 세워진 추모의 벽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삼촌을 그리워하는 유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전사자의 청년 시절 사진을 놓고 가거나 벽에 새겨진 이름을 탁본하는 방식 등 각자의 방식으로 산화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의 벽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많다. 추모의 벽이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미 양국 국민을 이어주는 등 올해 70주년을 넘어 오래도록 지속될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추모의 벽은 공원 내 기존 연못인 ‘기억의 못’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건립됐다. 둘레 130m, 높이 1m의 거대한 벽에 이름이 각인된 영웅 한 명 한 명은 그 자체로 한미동맹의 주인공들이었다. 전사자 이름은 추모의 벽을 구성하는 화강암 판 100개에 군별, 계급, 알파벳 순으로 각인됐다. 특히 전체 이름 중 이등병과 일병 이름만 53개 판에 걸쳐 각인됐다. 6·25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청년이 전사했는지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추모의 벽은 미국 내 참전 관련 기념시설 중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전사자 이름을 새겨 넣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한미동맹의 강고함과 양국의 깊은 인연을 담고 있는 조형물인 것.
추모의 벽 건립은 미군 참전용사들이 최초로 제안한 후 6년이 더 지난 2016년 10월 미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법이 통과되며 본격화됐다. 이에 앞서 웨버 대령은 2015년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총 28시간에 걸쳐 6·25전쟁 미군 전사자 3만6000여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호명식을 주도했다.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것과 동시에 추모의 벽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2016년에도 그는 6시간에 걸쳐 카투사 장병 7000여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3월 24일 열린 제8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천안함 피격 산화자 등 서해 용사 55명의 이름을 직접 부른 것도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호명식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추모의 벽은 법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도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여러 번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필요 예산 274억 원 중 국가보훈처가 266억 원을 지원했다. 나머지는 건립 사업 주체인 미국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KWVMF)과 한국 재향군인회 등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추모의 벽은 정전협정 69주년이자 한미동맹 69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7월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백악관에서 불과 직선 거리로 1.4km 떨어진 위치에 세워진 추모의 벽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삼촌을 그리워하는 유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전사자의 청년 시절 사진을 놓고 가거나 벽에 새겨진 이름을 탁본하는 방식 등 각자의 방식으로 산화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의 벽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많다. 추모의 벽이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미 양국 국민을 이어주는 등 올해 70주년을 넘어 오래도록 지속될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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