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고 사랑하는 우리 이야기… 그게 1500만명 홀린 ‘감동 열쇠’

이태훈 기자 2023. 4. 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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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인터뷰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77)는 이탈리아인 아버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 11년간 살았던 경험 덕에 아시아 문화에 친숙하다. 그는 “노래할 때 사람은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거짓말을 못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에선 진실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한쪽 벽이 거울로 된 넓은 연습실 안에 붉은 벽돌색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1998년 초연 뒤 벌써 25년.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77)를 최근 서울 중구 한 공연장 연습실에서 만났을 때, 사진을 찍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활짝 웃으며 자리를 옮긴 코치안테가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더니 별안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Il est venu le temps des cathédrales(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왔네)….”

한국어 가사가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로 시작하는 이 뮤지컬의 가장 유명한 곡 ‘대성당들의 시대’. 젊은 시절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활동한 유명 가수였던 이 작곡가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프랑스어 원곡을 불렀다. 연습실에 있던 공연 관계자들이 콘서트 관객이라도 된 듯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코치안테는 풍성하게 부풀려진 그의 곱슬머리처럼 나이가 믿기지 않게 활달하고 건강했다. 내년 이 뮤지컬의 새로운 한국어 공연을 앞두고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기 위해 5년여 만에 한국에 왔다. “여전히 모든 현지 언어 공연 오디션에 참여합니다. 새롭게 해석해 노래하는 배우들을 통해 이 작품이 새롭게 관객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었던 젊고 열정적인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열심히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2020년 프랑스 오리지널 프로덕션 내한 공연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그는 “코로나 이전엔 2~3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왔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국제적으로 더 열려 있는 역동적인 나라”라며 “노래할 때 가수는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거짓말을 못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에선 진실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올 때마다 ‘그사이 또 변했네’ 하는 생각이 들죠. 20년째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데, 예전엔 한국 하면 주로 자동차 얘기였다면 요즘은 세대 안 가리고 K팝 얘기를 해요. 한국 뮤지션들은 굉장히 교육과 훈련이 잘 돼 있고 서양 음악에 기반하되 한국적인 것을 잘 섞어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베트남에서 태어나 11년간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아시아에 오면 자연적으로 내가 스며드는 느낌, 또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고도 했다.

100㎏이 넘는 대형 종, 30톤이 넘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세트, 서사시처럼 아름다운 노래와 격렬한 애크러배틱 안무.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이미 현대의 클래식이자 뮤지컬의 전설이고, 코치안테는 그 창조주다. 세계 1500만명이 23국에서 9개 언어로 된 이 뮤지컬을 봤다. 한국 관객만 이미 100만명을 넘었다. “사는 동안 아주 가끔씩 기적이 일어나죠. 빅토르 위고의 방대한 원작에, 이전 뮤지컬의 관성적 틀을 깨부순 음악, 브레이크댄스와 애크러배틱을 혼합한 안무가 모두 들어 있었어요. 처음 파리의 모든 공연 제작사 문을 두드렸을 땐 아무도 만들려 하지 않았죠.”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이태경 기자

하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자 이 뮤지컬은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공연 속 노래들이 프랑스 대중가요 순위를 휩쓸었다. “떠돌이 이주민과 원주민, 부자와 가난한 자 같은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등장하죠.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는 신체 장애와 기괴한 외모 때문에, 에스메랄다는 보헤미안이라는 처지 때문에, 프롤로는 종교적 신분 때문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합니다. 사람은 겉으론 너무 달라 보이지만, 결국 고통받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보편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보편성이 이 작품이 가진 생명력의 열쇠일 거예요.”

그는 “특히 이 작품을 이민자에 관한 은유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는 민족과 혈통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섞이면서 더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걸 낳는 시대”라며 “이 작품 역시 흑인, 유럽 미국 남미의 록, 블루스, 팝 음악들이 섞여서 지금의 풍요로운 음악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 무대에서 음악, 가사, 안무, 무대, 연출 같은 모든 요소는 인간의 개성, 그 안의 영혼이 진실된 모습으로 드러나서 관객과 소통하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그는 이 뮤지컬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비결로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공연하는 동안 어떤 이유로도 원곡을 절대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부르기 힘든 노래. 배역을 맡으면 감옥에 가두다시피 엄격하게 노래 연습을 시키고, 완성된 뒤에야 마침내 무대 위에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날씨가 어떻든 가수 목 컨디션이 어떻든 단 한 음도 바꾸지 않아요.”

‘노트르담 드 파리’를 키워드 세 개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껄껄 웃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 하하하. 명료한 ‘단순성’, ‘내면의 아름다움’, 늘 변화하는 ‘새로움’, 이 세 가지가 곧 ‘노트르담 드 파리’라고 생각해요. 이제 젊은 시절 공연을 본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데리고 보러 오기도 합니다. 세대를 넘어 이 작품이 사랑받는 모습을 볼 때가 창작자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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