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8]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것
인간의 눈은 그리 성능이 좋지 않다. 멀리, 선명하게, 세밀하게, 빨리 보기 중에 딱히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능력이 하나도 없다. 기계로 치자면 참 별로인 셈이다. 동물 중엔 생존에 유리하도록 특별한 시각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타조는 십리 밖 물체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매는 색 감지력이 월등하며, 고양이는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세상을 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생존력이 낫다면 그것은 시력 때문이 아니라 눈으로 수집되는 정보를 복잡다단하게 활용할 줄 아는 뇌의 사고력 덕분이다.
이고은 작가는 최근에 발표한 신작에서 시간을 쪼갠 단면을 보여준다. 물체가 폭발하는 순간,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을 특별히 고안한 장치로 촬영한 것이다. 미국의 공학자 해럴드 에저턴은 일찍이 자신이 발명한 전자 플래시를 써서 우유 방울 왕관(1935)이나 날아가는 총알(1964)을 찍었는데, 그의 작업은 처음엔 충격적일 만큼 신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이내 상식이 되었다. 원래는 볼 수 없었다 해도 일단 한번 사진으로 보고 나면, 눈으로 본 것처럼 알게 되긴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사고력이고, 작품에서 무엇을 터트리느냐가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무려 캠벨 토마토 수프 깡통이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과 그 후예들이 사랑했던, 그래서 흔한 식료품이라도 명작의 존재감을 풍기는 오브제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깡통은 종이처럼 찢어지고 붉은 토마토 수프가 흩뿌려진다. 이고은은 경쾌한 파괴로 오랜 권위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에 도전했다.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발명된 이후로 인간이 눈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꾸준히 기여해왔다. 사진술을 가진 인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것은 찰나의 시간도 우주의 공간도 아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무엇을 볼 것인지 알려면 무엇을 보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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