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성남시장실 CCTV’로는 찍히지 않은 장면들
진짜였어도 비리 차단 안될 텐데 처음부터 촬영 안되는 가짜였나
2011년 당시 전국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한 CCTV는 36만4302대였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CCTV는 ‘성남시장실 CCTV’일 것이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그해 6월 언론 인터뷰에서 “시장실로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 CCTV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녹음 기능을 갖춘 CCTV를 시장 집무실 천장에 설치해 업무 시간의 모든 면담 장면과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장은 “거의 매일 수십억, 수백억원씩 결재하는데 누구한테,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맡길 것인지 결정에 따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바뀌다 보니 시장만 만나려 한다”면서 “자치단체장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와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남시장실 CCTV는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방송사들도 이 시장이 다른 사람과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CCTV 영상을 내보냈다. 마치 이 시장이 자신의 전임자인 민선 성남시장들이 모두 뇌물 혐의로 사법 처리된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청렴’을 다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음 해 1월 언론 인터뷰에서 “CCTV 설치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청탁은 거의 없어졌고 매수 시도나 압력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의 각종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있다. ‘대장동 4895억원 배임’과 ‘성남FC 133억5000만원 제3자 뇌물’ 사건은 그가 CCTV로 막겠다던 부정부패 유형이다. 이 대표는 백현동 아파트 개발 특혜, 정자동 호텔 설립 특혜 등 의혹으로도 수사받고 있다. 그의 말대로 성남시장실 CCTV가 ‘통제 시스템’으로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최근 대장동 재판에서 실마리가 나왔다. 이 대표의 측근인 정진상씨가 성남시장실과 연결된 비서실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와 관련해 정씨 변호인과 검찰이 ‘CCTV 진위(眞僞) 공방’을 벌였다. 정씨 변호인은 법정에서 “이재명 당시 시장은 뇌물을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소리까지 녹음되는 CCTV를 설치했다”고 했다. 성남시장실과 비서실 내 CCTV 위치를 표시한 도면까지 제출했다. 뇌물 제공이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정 밖에서 변호인의 말이 달라졌다. CCTV가 촬영은 가능하지만 녹음은 안된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에 검찰은 “성남시장실과 비서실 내 CCTV는 촬영 기능이 없는 모형”이라고 했다. CCTV 담당 공무원이 시장을 감시하는 게 부담돼 시장실에 모형 CCTV를 뒀고, 비서실 CCTV도 모형이라 민원인들이 항의하러 오면 직원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것이다. 시장실과 비서실에 CCTV가 설치·관리된 내역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정진상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유동규씨도 같은 말을 했다. “정씨에게 ‘CCTV가 시장님에게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정씨가 ‘저거 작동 안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유씨는 “성남시청에 CCTV를 뒀다는 건 대국민 사기극 중 하나”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당시 방송에서 시장실 CCTV가 작동하는 장면 보도를 다 했다. 객관적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검찰의 행태가 일상”이라고 하고 있다.
성남시장실 CCTV는 애초부터 ‘정치 쇼’ ‘전시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CCTV로 녹화되는 시장실에서 돈 봉투를 꺼낼 사람이 있겠나. 특혜와 뇌물은 CCTV가 없는 밀실에서 주고받는 법이다. CCTV가 있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밀실과 다름없다. 성남시장실 CCTV로는 찍히지 않은 장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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