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2] 국가가 타락하면, 法이 많아진다
로마의 3대 역사가로 꼽히는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공화국 기풍이 쇠퇴하고 제왕적 권력의 폐단이 심해지는 풍조에 대해 엄정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악티움 해전’은 영웅 옥타비아누스가 반역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로마 패권 시대를 연 전투로 칭송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개인적 불화로 시작된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 친척과 측근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정(帝政)의 막을 연 전투’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선을 긋는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남기는 세태를 거부하고, 영웅 서사에 의한 화려한 치장이나 분식(粉飾)을 걷어낸 채 냉정하고 건조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것이 타키투스식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중국에서는 느닷없이 타키투스 열풍이 분 적 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타키투스의 덫’을 거론하자, 관변 언론, 학계가 나서서 그를 집중적으로 홍보한 덕분이다. 타키투스의 덫이란 정권이 한번 인기를 잃으면 이후에는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이 불신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타키투스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맞지만, ‘타키투스의 덫’이라는 말 자체는 ‘투키디데스의 덫’이라는 용어를 벤치마킹한 중국산(産) 조어다.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일제히 ‘학습 모드’가 되어 반골 역사가가 남긴 제왕적 통치에 대한 비판을 금과옥조처럼 곱씹는 장면은 해학에 가깝다.
사실 가장 널리 알려진 타키투스의 명언은 ‘국가가 타락할수록 법의 수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권력이 견제되지 않으면 사심이 담긴 악법이 독버섯처럼 늘어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세력이 내용·절차·형식 모든 면에서 수준 이하인 포퓰리즘 법안들을 쏟아내는 한국 사회에 이보다 더 신랄한 경종을 울리는 명언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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