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혐오의 대상 아닌 삶의 변화 주체, 노동조합
곧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노동개혁’이 국정과제의 핵심이 됐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하나로 노동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취임 연설에서는 ‘노동’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2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관행으로 산업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노사를 불문, 불법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은 지난해 말 “공직부패, 기업부패, 노조부패를 우리 사회가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까지 언급한 바 있다. 노동조합 ‘낙인화’를 넘어 ‘혐오화’이고, 국정운영의 정치 전략 활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과 태도는 어떨까. 부정적 인식의 하나는 임금 인상이나 고용안정 등 자기 이익추구 집단화다. 때론 정치적 발언에 대한 비난도 제기된다. 특히 동등한 권리나 노동기본권 향상과 달리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에는 동의 수준이 낮다. 반면 국민 다수는 노조 필요성(79.6%)뿐만 아니라 활동에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완화에 노조가 기여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에 대한 질책과 비판도 적지 않다. 조직 노동만이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와 사회보장 등 사회제도 개혁에 더욱 나서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 국민들은 노조의 사회적 역할과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그렇다면 노조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노조가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밝힌 국내외 논문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노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저임금 해소나 차별은 물론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에서 조합원 가입과 조직률 상승(10%포인트)은 비조합원의 임금 증가(5%)뿐 아니라, 근로빈곤 해소의 촉진자다. 특히 최저임금 적용자는 비적용자에 비해 근로빈곤 탈출이 높은(7.4%포인트) 것도 검증된 결과다. 코로나19 시기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이 더 많은 해고와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노조는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 및 노동자의 삶과 쉼에 기여한다. 산재 조사를 거쳐 확인된 매년 600여건의 사망사고는 3시간마다 1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5분마다 다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노조 활동은 위험한 작업 환경과 장시간 노동에서의 사망 사고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노조 조직률이 1%포인트 증가하면 산재(0.7%포인트)와 은폐율(4.1%)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석면 폐질환, 혈액암, 근골격계 질환 등 이윤 창출 과정에서 은폐한 직업병 문제를 제기하고 인정받은 것은 노조와 활동가들의 투쟁과 노력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노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일터의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 한국사회 곳곳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유통 매장 의자 설치부터 아파트 경비 휴게실 개선, 택배와 물류센터 과로사 문제와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주체 중 하나가 노조이다. 최근에는 방송 프리랜서 표준계약, IT업계 포괄임금 개선, 병원 교대제 및 인력확충,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등 일터에서의 과도한 업무를 줄이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조 역할도 적지 않다. 성희롱이나 괴롭힘, 감정노동, 아프면 쉴 권리 요구 등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고, 법률 제정을 요구한 것도 노동과 시민사회였지 자본과 국가가 아니었다.
일터에서의 존엄성 회복과 새로운 변화의 주체로서 인정받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는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과 비인간적인 작업조건 개선, 기업과 국가의 감시·견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를 위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올해 5월1일, ‘메이데이’ 행사장 곳곳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이른바 ‘69시간 노동’과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아닌 ‘삶의 질’과 ‘평등한 노동’을 위해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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