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완벽하게 정치가 부재한 세계
총선이 1년 남은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두려운 고민이 생겼다. 과연 이 학생들에게 투표를 하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꼭 맘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투표는 시민의 민주적 권리이자 의무이니,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에라도 투표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학생들은 둘째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도 답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이 나라에 지금 필요한 중요 과제들에 대해 논의하다가 정치적 의제화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300명 국회의원 명단을 놓고 들여다봤다. 다섯 손가락은커녕 세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웠다. 참담했다. 우리의 논의는 거기서 멈췄다.
정치인이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려면, 의지만 갖고는 부족하다. 정치적 신념과 철학은 기본이고, 뜻을 같이할 동료들을 규합할 수 있는 정치력도 필수적이다. 자기 당에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정당 의원들에게도 존중받는 실력과 인품이 있어야 한다. 대중적 인지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없다. 저 덕목을 두루 갖추기는커녕, 한두 가지를 갖춘 사람도 찾기가 어렵다. 정당의 상황은 더 나쁘다. 더불어민주당은 왜 존재하고, 국민의힘은 누구를 위해 일하며, 정의당의 정치적 비전은 무엇인지, 정치학자인 나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전당대회는 정당의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당정치의 근간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는 돈봉투가 돌았고, 끼리끼리 묶어서 찍을 번호를 돌리는 유치찬란한 일이 서슴지 않고 자행되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룰을 바꾸고 경쟁자들을 찍어내서 치른 ‘지명대회’였다. 과연 지금 이 나라의 정당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좋게 말해 계파고 열성지지자이지, 패거리 문화와 팬덤만 남은 정당이 어떻게 국가와 입법부를 책임지겠는가.
정치혐오가 그리운 시대가 됐다. 정치를 다루면 언론 기사도, 유튜브도, 페이스북도 외면당한다. 온 국민이 정치 박사여서 정치학 박사가 필요없는 나라라고 농담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지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주식 얘기나 하자고 말을 돌린다. 빙하를 향해 가고 있는 배를 돌리는 건 포기하고, 각자 구명조끼를 챙기자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타락한 민주정’이란 이런 것인가, 생전에 지옥을 본다는 말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이 노골화되고 뻔뻔해진 세상이다. 한 발짝만 들어가면 아비규환인데, 세상은 고요하다.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처럼, 이 사회는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한없이 늘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도, 정부·여당은 전 정부 탓을 하고, 원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수수방관을 할 뿐이다. 공(公)은 죽고, 사(私)만 남았다. 원래 공이란 없고, 그것을 말하는 자는 위선자라는 비웃음만 남았다.
혐오할 가치조차 없어진 정치라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승만 기념관’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은 4·19 기념식에서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해 경고했다. 국정지지율을 발표하는 여론조사 기관들을 압수수색이라도 하겠다는 뜻일까?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쳤다는데, 이 글을 쓰는 나는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이것은 완벽하게 정치가 부재한 세계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엔 권력투쟁만이 남았다. 정치 뉴스의 대부분에 실은 정치는 없다. 누가 무슨 자리를 차지하고, 누가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지만 남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 이것은 ‘그라운드 제로’ ‘인터레그넘’의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치의 부재와 시간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재가 뼈아프다.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운 이유도, 그렇게 개혁을 한들 누가 새로이 당선될 것인가에 대해 국민의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 지금 민주당의 첫 틀이 형성될 때는 정치생명을 건 ‘정풍운동’이 있었다. 새누리당에서 유승민이 원내대표가 되어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기 어렵다.
괜찮다. 총선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았다. 학생들에게 투표장에 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새벽이 지나야 아침이 오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나는 아직 기다려 볼 테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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