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책 연구기관 부원장 “수도권 규제 완화” 부적절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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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이 국토균형개발과 관련해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체 상태에 놓인 국가 잠재성장률을 올리려면 수도권 규제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각종 수도권 규제 완화책을 내놓아 안 그래도 진정성을 의심받던 참이다.
정부는 KDI 제언을 빌미로 말로는 분권을 외치면서 정책은 수도권 몰아주기를 취할 셈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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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이 국토균형개발과 관련해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체 상태에 놓인 국가 잠재성장률을 올리려면 수도권 규제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제껏 획일적으로 지방 발전을 추구하는 바람에 인구와 기업의 집중에 따른 생산성 집적효과가 없었다며 균형발전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부문 이해집단이 국익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 여력과 생산성이 약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엇그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 경제학자 등이 참석한 ‘경제성장 전략 간담회’에서다.
이날 발언을 그저 수도권 배경을 가진 특정 개인의 사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발제자는 KDI 부원장일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국가미래전략 수립 실무 책임자다. 국가미래전략은 정부가 각 분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만드는 장기 정책과제로, 올 상반기 중 발표된다. 참여 연구자의 인식이 국정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이창양 산자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제안을 산업 대전환 전략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KDI가 객관성을 의심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과거 옹호하던 균형발전을 180도 뒤집음으로써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권위를 다시 한번 추락시키고 있다.
저성장의 책임을 균형발전 정책 실패로 돌리려면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펴본 적이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 이후 줄기차게 추진한 게 수도권 집중이다. 역대 가장 지방분권을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평가받는 노무현 정부조차 경북 구미 대신 경기도 용인에 SK하이닉스를 허가함으로써 지금의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물꼬를 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며 강력한 분권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각종 수도권 규제 완화책을 내놓아 안 그래도 진정성을 의심받던 참이다. 정부는 KDI 제언을 빌미로 말로는 분권을 외치면서 정책은 수도권 몰아주기를 취할 셈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젊은이들은 더 좋은 대학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어렵사리 정착한 수도권의 인구는 과밀이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다. 결혼은 꿈도 못 꾼다. 그 결과가 0.8명이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저성장은 수도권 집중이 아니라 균형발전 실패의 결과물이다. 집적에 따른 이익보다 불이익이 훨씬 크다는 건 수도권과 지방민의 현재 생활이 증거다. 국가 미래는 지방 활성화 여부에 달렸다는 걸 이제 삼척동자도 안다. 지금도 지방은 수도권의 인적 물적 자원 공급처 노릇을 하는데 뭘 더 양보하라는 말인가. 수도권 집적을 원한다면 굳이 정책을 쓸 필요 없이 시장원리에 맡기기만 해도 된다. 다만 그 대가는 지방민의 거대한 분노와 저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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