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지역균형발전의 새로운 대안 분산에너지법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의 기준은 돈이다. 이런 가정을 세워보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서울 곳곳에 발전소를 짓자. 대신 서울 시민과 기업의 전기료를 감면하는 아이디어다. 미세먼지의 주범인 화력발전소는 제외하자. 현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원자력발전소를 고려해보자. 원전이 겁이 난다면 훨씬 안전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냐’는 반문은 의미 없다. 서울에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특별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원자력발전을 예찬하시는 분들이 이제는 거주지 근처에서 발언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유쾌한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현 불가능한 ‘발칙한 발상’ 정도로 치부하는 게 현주소다. 그 바닥에는 ‘전기라는 것은 부산, 울산, 강원, 충남처럼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곳에서 생산해 수도권에 공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익숙한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내 건강에 해가 되거나 특히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절대 안 돼’라는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서울시가 상암동에 추진 중인 쓰레기소각장에 대한 거센 반대 움직임에도 같은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을 눈앞에서 논의해야 할 상황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 중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에너지법)이 첫 단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3월23일 여야 합의로 분산에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여야 의원 5명이 각각 대표발의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021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을 발표하는 등 법안 마련을 위해 수년간 공을 들였다. 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사만 남아 있다. 여야가 합의한 만큼 올해 입법과 내년 하반기 시행이 유력하다.
분산에너지법은 소규모 에너지 생산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분산에너지법은 기업체·주거지 등 전력수요가 많은 지역 인근에 중소형 열병합발전소, 지역난방, 전기차 충전시설, 에너지저장시스템(ESS), 태양광·풍력발전소 등의 건설을 쉽게 하고 판매까지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해안가의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수도권 등에 공급하는 시대를 이제는 접자는 것이다. 전력설비 신설·보강 등으로 적자가 심화되는 한국전력의 경영정상화에도 도움이 된다. 제주 등에서는 남은 신재생에너지를 전기차 용도 등으로 저장했다가 다시 판매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분산에너지법이 시행되면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부과할 수 있다. ‘전기판매사업자는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정할 수 있다’고 법안에 명시돼 있다.
전기요금 차등제는 10여년 전부터 제기됐다. 1월 기준 서울과 경기도의 전력자급률은 각각 11.9%와 64.0%다. 반면 부산과 충남은 각각 216.2%, 204.5%다. 발전소 건설·운영에 따른 피해는 비수도권에 떠넘기고 수도권은 값싼 전기를 사용해온 셈이다. 8개 광역단체장들이 최근 공동 건의문을 내는 등 전기요금 차등제는 비수도권의 숙원 중 하나다.
전기요금 차등제의 세부 방안은 아직 없다. 다만 한국환경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재생에너지 확산 이행방안연구’를 참조하면 규모와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연구자료는 2030년 기준으로 수도권은 kWh당 0.34원 더 지불해야 하고 비수도권은 0.48원 경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수도권은 8.5% 상승하고 충청·영남·강원·전라권은 각각 14.9%, 9.7%, 6.7%, 14.1% 하락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수요 감소로 이어지면서 전체 산업 산출량, 부가가치는 각각 1조2870억원, 1조1500억원 줄어든다. 취업과 고용도 각각 1만3510명, 7307명 감소가 예상된다. 반면 영남권의 경우 산출량, 부가가치는 각각 3조1120억원과 1조6190억원, 취업과 고용은 각각 2만164명, 1만643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가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도 적용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견고한 ‘수도권 과밀화 구조’가 전기요금 차등제를 계기로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만들어지는 분산에너지법이 올해 반드시 입법화되길 여야 정치권에 촉구한다.
한대광 사회에디터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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