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68) 약전골목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약전골목>의 맥을 짚어본다. 약전골목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한약시장인 대구 약령시로 조선, 효종 때 생겨났고 영남 산악지역에서 캐낸 온갖 약재들이 여기에 모여들어 문경새재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한약재 유통 최대시장으로 성장하였다.
뚱뚱함이 부의 상징이었던 나라도 사람도 허약했던 시절, 약전골목에서 짙게 배어나오는 약재 냄새에 엄마 손을 잡은 아이의 얼굴은 저절로 찡그러졌다.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아이를 달래서 한약을 먹이던 엄마가 사탕대신 하던 말이다.
1970~80년대, ‘우량아 선발대회’, ‘수험생 원기보충’, ‘산모, 산후조리’ 그리고 ‘어르신들 정력증진’까지 한방의 보약 한 첩은 솟구치는 기운 그 자체였다. 한방관련 상점 간판들이 병풍처럼 즐비했고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던 활기찬 약전골목이 오늘날에는 맥이 잘 잡히지 않는다. 기(氣)가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한방의 메카라 불리는 이곳, 상권이 기진맥진하게 된 원인은 비타민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 홍삼의 대중화 그리고 비아그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이다. 우량아가 비만아 취급을 받는 지금, ‘보약 한 첩’ 달이는 건 드라마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행사가 된 듯하다. 인근에 들어선 백화점과 하나, 둘 늘어나는 커피숍의 커피향이 약전골목을 잠식해 온다.
게재된 두 장의 사진, 왼쪽 하단에 보이는 청신약국은 1970년 개업당시 간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 국번 1자리가 3자리가 될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상점이름만은 변함없다. 반세기 넘게 한 곳에서 영업을 해온 상점이 몇 개나 있는지, 기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독립운동 자금지원과 연락 거점으로 약전골목이 발각되어 일제 강점기 1941년에 폐쇄된 적 말고는 약탕기 끓이는 화로의 불이 하루도 꺼진 적이 없던 여기에 <약전골목이 있던 터> 표석이 세워질지도 모른다.
엄마 손에 이끌려 약전골목을 방문했던 아이가 환갑의 나이가 되어 청신약국 ‘Since 1970’ 간판을 보면 어린 시절엔 쌉싸름했던 한약냄새가 달콤한 향기로 방울방울 피어오르지 않을까?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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