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우크라 무기지원, 해서도 안 되고 하지 않을 것
尹 제시한 3가지 전제조건 가능성 낮아
美 국빈방문 앞서 바이든 의식한 발언?
우크라전 선과 악 대결 아닌 민족 갈등
4국 가운데 러, 한국통일 가장 반길 것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밝혔다.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대규모 공격이나 학살, 러시아가 전쟁법을 심대하게 위반하는 경우,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인도적 재정적 지원에 국한한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공격용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6일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한국의 기여 확대를 바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한다면 이는 러시아를 적대하는 것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말마따나 한·러 관계는 파탄을 맞을 것이다. 한편 윤 대통령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을 향한 '립서비스'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의 즉각적 반발과 美 국빈방문
보도가 되자마자 러시아가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분쟁에 개입하는 걸 의미한다"며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의 반응은 노골적이다. 그는 "우리의 적을 도우려는 국가가 새로 등장했다"며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26일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있어서 더 관심을 끌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바라는 미국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그래서 나왔다. 단순 외교적 효과를 노린 발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교전 상대가 있는 전쟁에서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밝히는 것은 전략적 하책이다. 설령 무기를 지원한다고 해도 기밀을 유지한 채 비밀리에 행하고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기 지원 가능성을 공공연히 밝힘으로써 1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붓고도 우크라이나에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체면을 높여주려는 의도였다면,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선악, 좌우 대결 아닌 루소포비아 대(對) 러시아 민족주의의 충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다수 한국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선(옳음)과 악(그름), 좌파(러시아 공산주의)와 우파(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사가 깊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민족적 앙금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분리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섞여 살면서 문화적 언어적 인종적 갈등이 누적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을 우크라이나 정부는 억압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이 분리 독립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식의 선뜻 결론 내리기 어려운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
러시아는 공산주의체제가 아니다. 한국보다 더 자유시장주의 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좌파도 아니다. 단지 권위주의적 독재국가다. 우크라이나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은 하지만 극심한 부패와 올리가르히의 과두정치가 판을 치는 국가다. 사이비 민주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매수와 마피아가 횡행해왔다. 우크라이나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유럽에서 거의 꼴찌이고 세계적으로도 순위가 100위 밖이다.
또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의 전쟁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배후의 미국 영국 EU(유럽연합),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서방과 러시아 간 전쟁이다.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서방과 나머지 글로벌 사우스와의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된 서방의 뼛속 깊이 뿌리박혀 있는 루소포비아(russophobia, 러시아인 혐오) 대(對) 러시아 민족주의의 충돌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익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남의 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늘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6·25 때 도움 받은 한국이 돕지 않으면 배은망덕?
6·25 전쟁 때 세계 여러나라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한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으면 배은망덕 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지금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으면 나중에 한반도에 전쟁이 터졌을 때 우리를 도우려 나설 국가가 있겠느냐는 주장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6·25 발발 당시 세계 지형과 현재의 그것은 완전히 다르다. 6·25 때는 공산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은 그런 대의가 없다. 물론 미국 영국 EU는 이웃나라를 무단 침략한 '강도 같은' 러시아를 혼내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살펴본 바처럼 이 전쟁은 그런 대의가 약하다. 단적인 증거가 만약 그런 대의가 있다면 왜 미국과 서방을 제외한 나머지 80% 세계(글로벌 사우스)가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가.
특히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미래 통일 공간에서 러시아의 활용 가능성이다. 어떤 식으로든 미래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려 할 때, 미국·일본·중국 그리고 러시아 가운데 과연 어떤 나라가 한반도 통일을 가장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까. 일본과 중국은 이 질문에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진정 원할까?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로 4개국 중 가장 수혜를 입을 국가다. 또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현재도 우리에게는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과 러시아 관계에서 보이는 해소 불가능한 적대적 앙심이 한·러 관계에는 없다. 우리는 미래 통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인도적 재정적 지원에 그쳐야 한다. 무기 지원이 낳을 국익 손실을 알고 있을 윤 대통령과 용산 국가안보팀도 결국 무기 지원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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