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러·중 ‘자극’과 미국에 ‘다걸기’, 한반도 위기 키운다
[윤석열 정부][러, 우크라 침공]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조건부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발언으로 국제사회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반발하고 미국은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 쪽에 밀착하는 윤 대통령의 ‘다걸기’ 외교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조건부 발언이란 전제가 있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북한과 한층 밀착할 근거를 만들고 한반도 위기감 고조를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모양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라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입장은 계속 유지된다. 국제사회가 공분할 만한 대량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며 거듭 공을 러시아 쪽에 돌렸다.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대량학살 등을 전제로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힌 윤 대통령의 인터뷰가 지난 19일 공개되자,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등 러시아의 반발이 이어졌다. 20일에도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입장을 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무기 공급은 어느 나라에 의해 이뤄지든 노골적·적대적인 반러 행동”이라고 반발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유사한 행보는 그러한 행보를 취한 국가들과의 양자 관계에 부정적으로 반영될 것이고, 해당국의 구체적 안보 이익을 건드리는 문제들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결정에서 고려될 것”이라며 “한국의 경우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에 관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러 특수 관계를 활용해 남북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내비친 것이다. 주한러시아대사관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냈다.
반면 미국의 존 서플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 언론 질의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적 지원과 관련해 동맹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발언을 매개로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각이 견고해지자, 대통령실은 러시아 반발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코멘트”라며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의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낮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어떤 추가 지원을 할 것이냐’라는 논의는 현재 준비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불리하게 이끄는 메시지를 스스로 발신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날 중국은 윤 대통령이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절대 반대한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에 대해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외교부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으로 관계 강화에 나섰고,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러의 협조가 절실하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한국의 대러시아 교역량도 211억5천만달러(2022년 기준)로 작지 않은 규모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겨레>에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 균형을 찾아 국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표여야 하는데 모두 포기하고 미국 일변도로 가는 것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여야의 의견도 듣고 공론화하는 것이 먼저다.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고 언론을 통해 공표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반발도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어제 하루는 대통령의 말 몇 마디로 대한민국이, 또 대한민국 국민이 수천냥의 빚을 진 날”이라며 “군사 지원 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해서 대러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동북아 평화 안정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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