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가 치매 치료제?...치매원인 단백질 수치 낮춰

김만기 2023. 4. 2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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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구진, '수보렉산트' 가능성 발견
3일간 38명의 치매 원인 단백질 관찰
수면제 복용 후 10~20% 수치 감소
대상자·용량·기간 등 추가연구 진행
미국 연구진은 불면증과 알츠하이머병의 연관성을 연구하면서 수면 보조제인 '수보렉산트'가 치매 원인 단백질의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티이미지 제공

[파이낸셜뉴스] 수면제로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까.

미국 연구진이 간단한 임상시험으로 수면제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단백질 '아밀로이드'와 '타우'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면 보조제 '수보렉산트(suvorexant)'가 치매 원인 단백질 수치를 10%에서 최대 20%까지 낮췄다. 알츠하이버 단백질 수치가 높을수록 병이 악화되기 때문에 이번 연구 결과는 치매를 예방하고 지연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수면 장애,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

20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의과대학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신경학 연보(Annals of Neurology)'에 발표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수면제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잠재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워싱턴대학 수면의학센터 소장이자 신경학 부교수인 브랜든 루시 의학박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통해 이미 사용 가능하고 안전한 것으로 입증된 약물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핵심 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수면 장애는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억 상실과 혼란 등의 인지 문제가 나타나기 몇 년 전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병이 수면을 방해하는 뇌의 변화를 일으키고, 부족한 수면은 뇌에 해로운 변화를 가중시키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알츠하이머병은 단백질 아밀로이드 침착물이 뇌에 쌓이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수년간 아밀로이드가 쌓인 후 또다른 단백질 타우는 뉴런에 독성이 있는 엉킴을 형성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들은 타우 엉킴이 감지될 때쯤 기억력 감퇴와 같은 인지적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이 뇌에서 아밀로이드와 타우의 높은 수치와 연관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하지만 좋은 수면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단백질 수치를 줄이고, 병이 진행되는 것을 중단하거나 완화되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진은 쥐 실험을 통해 수보렉산트가 뇌 속 아밀로이드와 타우 수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루시 박사는 "만약 매일 아밀로이드 수치를 낮출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 속 아밀로이드 침착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타우가 엉킴을 형성해 뇌 속 신경세포 '뉴런'을 죽이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밀로이드 수치 10~20%까지 감소

이 약은 FDA를 통해 이미 사용 가능하고 안전한 것으로 입증됐으며, 이제는 알츠하이머 병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갖게 된 것이다. 수보렉산트는 각성하게 만드는 천연 생체 분자 '오렉신'을 차단해 잠이 들게 하는 약물이다. 지금까지 3가지 오렉신 억제제가 FDA 승인을 받았으며, 더 많은 약물이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

연구진은 이후 수보렉산트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우선 인지 장애가 없는 45~65세 38명을 모집해 2박3일간 테스트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눠 오후 9시에 약을 복용하게 한 뒤 잠을 잤다. 12명에게는 수보렉산트 15㎎을 먹이고, 13명은 수보렉산트를 10㎎, 13명은 가짜 수면제를 더 많이 먹였다. 연구진은 약을 먹기 1시간 전부터 2시간 간격으로 36시간 동안 뇌척수액을 추출해 아밀로이드와 타우 수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첫 날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은 가짜 약을 먹은 사람보다 아밀로이드 수치가 10~20%까지 감소했다. 타우 수치도 가짜 약을 먹은 사람들보다 10~15%까지 떨어졌다. 반면 적은 양의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은 가짜약을 먹은 사람들의 수치와 비슷했다. 첫 복용 이후 24시간까지 수면제를 먹은 그룹은 타우 수치가 상승한 반면 아밀로이드 수치는 가짜약을 먹은 그룹보다 낮게 유지됐다. 둘째날 밤에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은 두 단백질의 수치가 다시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 개념을 증명하는 연구일뿐 당장 알츠하이머병 환자나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수면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루시 박사는 "아직 장기 복용이 인지능력 저하를 막는데 효과적인지 알지 못한다"며 "만약 효과적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얼마만큼씩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루시 박사는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되도록이면 숙면을 취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수면 전문가를 만나 수면 문제를 치료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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