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민주주의의 법치 규율에 정치 사법화의 해법이 있다
정치의 양극화와 사법화를 방지하는 길은 궁극적으로는 정치에 달려있다. 바람직한 정치가 해법이다
하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다. 다른 하나는 확실한 권력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정치다
정치 양극화와 사법화는 자주 함께 간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검찰과 법원에 의한 법치를 규율해야 한다
민주적인 법치의 실현을 통해서 정치의 양극화가 아니라 공존과 타협의 정치를 수행한다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함께 발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밖으로부터의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부터의 위협이다. 전자가 외생적·환경적 요인이라면 후자는 내생적·본질적 요인이다. 민주주의 내부로부터의 위협은 주로 정치의 양극화와 정치의 사법화를 말한다. 그런데 둘은 밀접히 맞물려 있다. 이를 광의의 ‘민주화’에 적용하여 좁은 의미의 ‘민주화’와 ‘탈민주화’로 나누기도 한다. 전자는 의회와 대표의 역할이 크고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 넓으며, 후자는 법원과 검찰의 비중이 크고 정치의 양극화·적대화가 심각하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탈민주화’는 견제와 균형에 기반한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을 사례로 들자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의 경우 민주주의가 검찰주의·사법주의를 규율하는 ‘민주화’ 국면이었다면,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정치의 양극화·진영화·사법화·검찰화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탈민주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두 종류의 관계 유형을 보여왔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에는 자기 진영을 향해 법치를 적용하고 처벌하는 대신 반대 진영에게는 외려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라 연립과 연합을 제안하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후자에 들어서는 진영에 따른 정치의 양극화와 사법·검찰의 정치화가 민주주의의 공간과 역할을 현저히 축소시켰다.
정치의 영역이 넓고 타협을 이루면 정치의 사법화 영역은 당연히 줄어든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사법주의와 검찰재량권은 크게 확대된다. 특정 일방이 의회에서 타협과 동의를 구하는 대신 검찰·법원·헌재의 판단을 구하려고 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정치적 행위의 합당과 부당, 입법적 결정의 합법과 불법을 판정함으로써 사법부·판사·검사가 사실상 입법자와 입법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의 입법기능이기 때문에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 법을 통한 정치투쟁, 이른바 법쟁이 되기 때문이다.
법과 전쟁의 합성어인 법쟁(法爭. lawfare)은 법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법을 통한 전쟁과 투쟁을 말한다. 법쟁사회가 되면 법은 가장 중요한 문제해결 수단이 된다. 대화와 타협, 정치와 민주주의의 영역은 그만큼 축소된다. 승자와 패자, 합법과 불법이 분명한 전쟁 같은 법쟁, 전투 같은 법투(法鬪)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수록 전사요 해결사로서 법률가·검사·판사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민주주의가 법쟁의 가두리에 갇히는 것이다.
자의적 재량권 축소나 폐지 필수
따라서 정치의 사법화를 통한, 검찰주의와 사법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침식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법치의 기본 원칙들 자체가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피의사실 공표금지, 불구속 수사의 원칙들을 말한다. 참정권과 공무담임권을 포함한 정치적 시민권은, 민주주의는 물론 개인 자유와 인권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되고 적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네 편과 내 편에 따라, 또 수사 주체의 자의에 따라 피의사실이 침묵과 공표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유죄와 무죄는 공표나 여론이 아니라 법정에서 획정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사건의 경우 기소 이전에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여론을 통한 대중적 재판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공정한 민심 형성과 정치 경쟁에 더욱 위험하다. 법치의 파괴로 인한 법치와 민주주의의 침식행위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민심 획득이 기축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가장 중요하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법이자 불법인 수사과정의 공표행위는 사법행위가 아니라 정치행위이며, 수사행위가 아니라 파당행위다. 누구든 법정에서 유죄를 판결받기 전까지는 무죄다. 검사의 기소조차 유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피의사실은 기소 전에 불법적으로 광범하게 공표되고 있다. 오보 방지나 피해 확산의 예방, 또는 범인 검거와 같은 필수 요건을 제외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피의사실은 공표되거나 미리 유죄로 추정되면 안 된다.
법은 어떤 경우에도 근대 법치 초기의 잠언을 따를 때, 산맥이나 강둑을 만들면 안 된다. 산맥과 강둑은 가족·동료·조직·진영을 말한다.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기 가족과 동료 여부, 같은 조직과 진영 내외가 법 적용, 즉 수사와 방치, 피의사실 공표와 금지, 포용과 처벌, 무죄와 유죄의 기준이 된다면 법치는 인치가 된다. 가족과 진영을 기준으로 법의 팔은 절대 굽어서는 안 된다. 법치의 본질이자 생명이다. 법의 팔이 안과 밖으로 굽기 시작하면 법은 무너진다. 안으로 굽는다면 정의의 원칙이 아니며, 밖으로 굽는다면 형평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은 가족과 동료, 조직과 진영의 계선을 따라 고무줄처럼 춤을 준다.
따라서 국가형벌권의 주체인 검찰과 경찰의 과도한 자의적 재량권 영역과 범주의 축소와 폐지가 필수다. 오용과 남용,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형벌권은 오직 진실과 사실에 근거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행위를 넘어 사람을 보면 안 된다. 법치의 골간 중의 골간이다.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담당하는 기구가 자의적이며 독단적이고, 정치적이며 파당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한다면 법치의 보루는 무너진다. 네 편과 내 편에 따라, 나와의 거리에 따라, 소속과 진영에 따라 수사와 방치, 기소와 불기소, 유죄와 무죄가 나뉜다면 법치는 파괴된다.
재량권은 공적 직임자의 판단과 선택의 범위를 말한다. 따라서 자의적으로 적용될 경우 법치의 근본은 사라진다. 검찰권의 전횡적·독단적 행사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객관적인 사실적·법률적 요건을 넘는 판단기준과 재량이 허용되면 안 되는 이유다.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한 진영의 사건은 뭉개고 다른 진영의 사건은 들추어낸다면 법률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법의 형평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범죄 처벌은 물론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검사의 기소독점권과 과도한 재량권은 전제적 권한으로 불릴 만큼 법과 법치를 위협하고 그것을 정치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도 없애야
민주주의와 법치의 동시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폐지도 중요하다. 현대 국가의 현실에 비추어 정부입법은 때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이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국가에서 행정부에 법률안 제출권까지 보장하는 것은 안 된다. 한국의 경우 법률안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법률안 제출권까지 갖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침해이며, 권력분립의 원리와 대통령제의 헌법정신에도 정면 위배된다. 따라서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시 대통령과 행정부는 집권당 의원들을 통하여 얼마든지 입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의회 내 논의와 결정과 법안 제출을 할 수 있다. 이는 국민대표와 의회에 대한 존중은 물론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근대 입헌주의와 권력분립, 대한민국 헌법 원리와 정신에도 부합한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도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법률안 제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대통령제의 한 중심 원칙인데 개헌안 발의권까지 갖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일체의 개인과 통치 권력을 헌법 아래에 두는 것은 근대 입헌주의의 골간 중의 골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에게 최고 규범인 헌법에 대한 개정 발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논리모순이자 입헌주의 원리의 위반이다. 따라서 법치에 저촉되는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은 반드시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대한민국의 법치를 위협하는 시행령 통치 관행의 확실한 극복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헌법상 명령은 두 가지 범주에 한정된다. 하나는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위임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집행명령]이다. 즉 입법부에서 제정한 법률의 집행을 위한 사항이나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에 한정된다. 즉 시행령은 법률의 집행을 위한 것과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받은 것이 아니면 제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시행령 지배의 사회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행령이 존재한다. 집행명령과 위임명령의 한계를 벗어나 법치를 우롱하는 시행령 관행은 반드시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행령은 철저히 헌법이 허용하고 있는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에 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위헌이자 위법이다. 위헌·위법·탈법·초법적인 시행령에 의한 통치는 법치가 아니다. 금지되어야 한다. 초법통치이자 위법통치이기 때문이다. 관행이라고 해서 잘못된 악습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법치를 위반하는 시행령을 제정·집행하는 관행을 지속하면서도 법치를 말하는 모순은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공화국의 근본 토대의 하나는 권력 분립과 견제의 원칙과 함께 어느 부문도 다른 부문의 고유 권한과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의 붕괴와 함께 처음에는 공화국의 원리가, 이어서 민주주의 원리가, 끝내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위협받는다. 따라서 법률가들이 마치 ‘국가 안의 국가’처럼 온갖 부서에 파견되고 국정을 관장해서는 안 된다. 법률가들의 역할은 검찰과 법원의 범위 내에서 법치, 즉 법의 집행과 판정에 한정해야 한다. 군인들이 국가안보와 수호에 집중해야 하듯 법관과 검찰은 법치와 인권보호와 부패방지 역할에 한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검찰·사법부·헌재에 대한 대통령과 집행부의 인사권은 크게 제약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집행권과 사법권의 근접 또는 일체화를 통해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립이 기대와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더 큰 차원의 권력분립, 특히 대통령과 행정부 권력의 분산은 시도하지 않은 채, 검찰 내부의 기구와 역할 분리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접근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점은 민주주의와 입헌주의의 원리에 비추어 당연하다.
공무 담임의 일반 원리에 비추어 검사의 신분보장은 행정부 소속의 공무원 수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탄핵과 파면의 과도한 법적 규정과 보호문제도 동일하다. 임명직인 일반 검사를 탄핵의 대상으로 규정하여 평등과 법치의 원칙을 초월하여 보호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권력분립의 원리에서 볼 때 탄핵 제도는 선출직과 법관에 한정해도 충분하다. 직위와 역할에 비추어 검사의 신분을 국가공무원법의 규정 이상으로 보장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 즉 <검찰청법>의 검사 신분보장에 관한 조항은 <국가공무원법>의 해당 조항 준용으로 충분하며, 그렇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실제로도 행정부 소속이다. 정치중립도 마찬가지다. 실제 역할과 행위에서 검사가 일반 공무원보다 특별히 더 중립적이라는/이어야 한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 요컨대 국가형벌권 기구와 행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한 특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징계와 처벌 역시 일반 국가공무원과 굳이 구별되어야 할 명분과 근거는 존재하기 어렵다.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 즉 준사법기구라는 이중적인, 나아가 모순적인 논리와 위치 속에 집행부의 조직적·행정적 집행권한과 사법부의 개인적·사법적 특권을 모두 향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체계에 맞지 않는다. 민주국가의 어떤 기구도 그러한 이중적 위치와 성격 속에 양쪽의 권한과 특권을 동시에 누리는 조직과 집단은 없다.
검사 신분보장은 공무원 수준으로
선출직도 아니고 3권분립 대상도 아니면서 그에 준하는 신분보장을 제공받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기소행위 전담기구로서 조직·역할·신분보장의 동등성과 일관성을 택하든지, 아니면 수사체계의 지휘부로서 경찰·공안·치안을 담당하는 행정적 통일성을 택해야 할 것이다. 행위와 역할도, 신분과 특권도 양쪽 모두를 다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 초기 <검찰청법> 제정 이래의 논란에서 보듯 재판관과 검찰관, 판사와 검사의 신분보장이 같아야 할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 준사법기구와 수사지휘부는 민주공화와 법치의 근거가 같지 않다. 법치·국가기구·국가형벌체계 등 어떤 것을 고려하더라도 수사는 사법행위 또는 사법기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사법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그것은 치안, 즉 행정행위에 해당된다.
정치의 양극화와 사법화를 방지하는 길은 궁극적으로는 정치에 달려 있다. 고래로 민주주의는 단명한 정체였다. 대표·공화·대의의 원리와 만나 민주공화국과 대의민주주의가 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에야 비로소, 그나마도 몇몇 국가들에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과 같은 승자독식체제가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검찰의 정치화와 결합하여 지속된다면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생명은 크게 단축될 것이다. 바람직한 정치가 해법이다. 하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다. 최소한 입법연합이나 정책연합은 물론 연립정부와 연합정부의 구성은 더욱 바람직하다. 다른 하나는 확실한 권력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정치다.
정치의 양극화와 사법화는 자주 함께 간다. 따라서 법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헌정민주주의가 아니라, 주권자의 의사에 따른 민주주의가 검찰과 법원에 의한 법치를 규율하는 민주적 법치의 실현에 바람직한 길이 있다. 이를 통해 정치의 양극화가 아닌 공존과 타협의 정치를 수행한다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모두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함께 발전하고, 그럼으로써 끝내는 민주공화국이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정치 양극화와 사법화의 절정에서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민주적 법치국가와 민주공화국으로의 대도약을 향한 대타협을 호소한다.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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