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묻다가 다시 쓴맛 볼라…미국의 ‘카슈끄지 딜레마’

손우성 기자 2023. 4. 20. 22: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권단체 “사우디·이집트, 미국서 활동하는 반체제 인사 살해 협박…바이든 행정부는 알면서도 방관”
2018년 사우디 출신 언론인
이스탄불 총영사관서 피살
미, 배후로 빈살만 왕세자 지목
양국 관계 악화에 어물쩍 넘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중동 일부 국가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반정부 인사를 겨냥해 살해 위협 등 겁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주장이 19일(현지시간) 제기됐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러한 반인권 행태가 자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중동과의 관계 훼손을 우려해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비영리 인권단체인 ‘프리덤 이니셔티브’가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 동맹국인 사우디와 이집트 정부가 미국 본토에 있는 반체제 인사와 인권 운동가를 침묵시키기 위해 위협과 감시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양국은 ‘초국가적 탄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더 혁신적이고 대담해졌다”고 우려했다.

이 보고서는 프리덤 이니셔티브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우디·이집트 출신 반정부 인사와 이해관계자들 7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에서 익명의 한 이집트 인권 운동가는 “워싱턴 식당에서 이집트 정보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감시를 받았다”며 “이집트 대사관이 영사 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집트 활동가는 더 나아가 “자신을 보안요원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프리덤 이니셔티브 사우디 지역국장인 압둘라 알라우드는 “사우디 정부 명령을 받은 세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알라우드가 공개한 메시지엔 ‘당신은 공항 가로등 기둥에 매달릴 것이다. 모든 반역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판결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사우디와 이집트 정부는 자국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 가족을 협박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미국에 본부를 둔 ‘언론인 보호 위원회’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자 셰리프 만수르는 WP에 “이집트에 있는 친척들이 나의 인권 운동과 관련해 체포됐고 고문당했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자 가운데 8명은 사우디 당국이 가족을 가뒀거나 친척이 실종됐다고 답했다.

WP는 “보고서에 담긴 진술은 사우디와 이집트 반체제 인사들이 세계 어디에 살든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면서 “설문조사에 응한 많은 사람이 고립감을 호소하고 악몽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미 사우디·이집트 대사관 측은 WP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문제는 미국 정부 태도다. 프리덤 이니셔티브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현행법을 위반하는 사우디와 이집트 행동에 의미 있는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8년 10월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된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사진) 사건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시각이 다수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당시 살해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특정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왕세자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고 사태를 어물쩍 넘겼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유가 급등과 중국과의 패권 경쟁 등을 이유로 사우디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고 분석한 바 있다. 프리덤 이니셔티브는 “미국 정부는 입법을 통해 사우디와 이집트의 반체제 인사 억압을 범죄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