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빌트인’ 2조3000억원대 담합...가구업체 8곳 무더기 기소
검찰이 신축 아파트에 설치되는 ‘붙박이 가구(빌트인)’ 입찰 과정에 2조3000억원대 담합(談合)을 한 혐의로 국내 유명 가구업체 8곳과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9년간 담합하면서 가구 납품 가격을 평균 5% 높이면서 아파트 입주자들이 1150억원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이정섭)가 20일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가구업체에는 한샘, 한샘넥서스, 넵스, 에넥스, 넥시스, 우아미, 선앤엘인테리어, 리버스 등 8곳이 포함됐다.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현직 임직원은 최양하(73) 전 한샘 대표, 김범수(54) 전 넵스 대표, 최민호(50) 넥시스 대표 등 12명이다.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 현장 783곳의 주방 및 일반 가구 공사 입찰에 참여해 낙찰 예정자와 입찰 가격 등을 사전에 합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구업체 직원들이 제비뽑기 등으로 낙찰받을 순번을 정하고, 낙찰 예정 업체가 높은 가격에 뽑힐 수 있도록 나머지 업체들은 더 높은 가격으로 입찰해 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구 업체들은 전화,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입찰 가격과 견적서를 공유했다. 이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한 업체 관계자가 ‘저번에 제비뽑기 한 대로 이번 현장은 저희 차례입니다. 42억5000만원에 들어갑니다’라고 하자, 다른 업체 관계자들이 ‘저희는 43억원 쓸게요’ ‘저희는 43억8000만원 쓰겠습니다’라고 하는 식의 내용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한다. 담합 대상 아파트에는 송파 헬리오시티, 롯데 시그니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기소된 가구 업체들이 9년간 담합으로 낙찰받은 계약 금액은 2조3261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정섭 부장검사는 “가구 업체들이 자유경쟁으로 낙찰했을 때보다 5% 정도 상향된 금액으로 낙찰가 합의를 했다”면서 “담합이 9년간 이어지면서 아파트 분양가에 조금씩이라도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가구 업체들의 담합으로 아파트 입주자들이 약 1150억원을 더 부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 수사는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업체에 대해 기소를 면제해 주는 ‘카르텔 형벌감면 제도(리니언시·leniency)’를 검찰이 적용한 첫 사례다. 애초 수사선상에 가구 업체 9곳이 올랐는데 이 가운데 현대리바트가 작년 5월 자진 신고를 하면서 이번에 기소를 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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