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모내기, AI가 병충해탐지…다년생 벼에 ‘황금쌀’도 탄생
베트남 하노이 동쪽 박닌성 곡창 지대에서 벼를 재배하는 느한씨의 논에선 수시로 “웅웅” 소리가 울려퍼진다. 70ha에 달하는 느한씨의 논 위를 누비는 농업용 드론 두 대가 날아다니는 소리다. 원래 느한씨는 농번기에 스무 명 넘는 사람을 고용해 농약을 치거나 비료를 뿌렸지만, 이제는 드론 두 대가 같은 일을 거뜬히 해낸다. 빠른 속도로 논 위를 날아다니는 드론들은 정밀 폭격기처럼 필요한 지점에 정확한 양의 살충제를 뿌린다. 사람이 손으로 뿌릴 때처럼 농약이 낭비되거나 고르지 않게 뿌려지는 걱정을 덜었다.
드론은 급격한 도시화로 일손 구하기에 애를 먹었던 베트남 농부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40kg까지 탑재 가능한 드론과 조종사 한 팀이 인천공항 전체 부지와 비슷한 논 5000ha 규모의 쌀농사를 거뜬히 책임지고 있다. 최근 벼농사용 드론 성능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별도의 조종 인력 없이도 자율 비행하는 기능을 가진 드론이 등장하고 있고, 드론에 달린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분석해 병충해 발생을 조기에 탐지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인류는 쌀을 1만 년간 생산해왔다. 여전히 인류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20%를 쌀이 차지하고 있고, 세계 쌀 생산량은 연간 5억t이 넘는다. 벼를 재배하는 면적은 남한 넓이의 약 16배인 1억6370만ha에 달한다. 이렇게 방대한 쌀 산업이 ‘하이테크 시대’를 맞아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대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쌀을 생산하는 첨단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드론·로봇·무인 이앙기가 논을 종횡무진하며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쌀 품종을 개량해 생산성을 높이는 유전 기술도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1960년대 농약과 비료 사용, 과학적 재배법 도입 등으로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했던 ‘녹색혁명’에 버금가는 ‘제2의 녹색혁명’이 이뤄지고 있다.
쌀은 기후변화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쌀 재배가 타격을 받는 동시에, 벼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체 메탄을 발생시킨다. 쌀을 둘러싼 이런 딜레마도 기술 발전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쉼 없이 이뤄지고 있다.
로봇과 자율주행 이앙기가 벼농사 짓는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가 도로 위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 개발을 계속 진행 중이라면, 논 위에는 이미 자율주행 이앙기가 출현했다. 사람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논에 들어가 손으로 모내기를 해야 하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일본 최대 농기계 기업 구보다는 자율주행 이앙기를 개발했다. 사람이 조종을 하지 않아도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한 간격으로 모내기를 해준다. 논의 한쪽 면이 곡면이면 알아서 곡선 주행을 하고 장애물도 피해간다. 구보다는 “일본의 논은 크기나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어떤 논에서도 자동 모내기가 가능하도록 기능을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닛산은 2019년 로봇 오리 ‘아이가모(오리)’를 개발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논에 오리를 풀어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농법이 있었는데, 로봇 청소기 크기의 로봇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로봇 아래에 달린 고무 솔 두 개가 계속 회전하면서 잡초가 자리 잡지 못하게 막는다.
드론은 쌀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장비로 자리잡는 중이다. 미국의 존 디어, 중국의 XAG 등 세계 유수의 농기계 기업들이 드론 성능을 개량하고 있다. 존 디어의 드론은 프로그램으로 미리 설정된 경로대로 움직이면서 작업을 한다. 사람이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배터리도 자동으로 교체하고, 농약도 다시 채운 다음 날아오를 수 있는 자동화 기능을 갖췄다. 대개 벼는 볍씨가 싹을 틔운 모를 옮겨 심는 방법으로 재배가 많이 이뤄지지만, 볍씨를 철 성분으로 코팅해 바로 볍씨를 뿌리는 방식의 농법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드론을 통한 볍씨 살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보다 과학적인 농법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1960년 미국 포드재단과 록펠러재단의 출연으로 필리핀에 설립된 농업 싱크탱크인 국제쌀연구소(IRRI)는 ‘크롭 매니저(crop manager)’라는 온라인 서비스를 내놓았다. 농부들이 인터넷으로 질문하면 쌀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비료 종류와 사용 시기, 사용량 등을 추천해준다.
AI도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AI를 활용해 언제 모내기를 해야 수확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예상 강우량 등을 기반으로 모내기 날짜 등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은 이미 개발돼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같은 추가 변수 등을 반영해 날짜를 골라줄 수 있도록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논을 촬영한 이미지를 AI로 분석해 병충해 피해를 조기에 파악하는 기술도 쌀 생산량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생명공학 꽃피워 다년생 벼와 ‘황금쌀’ 탄생
벼의 재배 방식에 IT 관련 신기술이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벼의 품종 개량에도 과학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며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이언스지는 다년생 벼를 ‘2022년 10대 과학 성과’로 선정했다. 원래 벼는 매년 모내기를 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그런데 한 번의 모내기로 여러 해 동안 쌀을 수확할 수 있는 벼가 탄생한 것이다. 벼를 베어 내고 나면 이듬해 다시 벼가 자라난다. 다년생 벼는 농민들에게 경작 비용을 절반 정도로 줄여준다. 매년 모내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노동력 절감 효과도 크다.
2018년 처음 다년생 벼를 개발한 중국 윈난대 연구팀의 재배 실험 결과 대략 4년까지는 일반 벼와 비슷한 수확량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최근에는 다년생 벼의 한해 수확량이 일반 벼를 능가할 정도로 생산성이 향상됐다. 따라서 과학계에서는 다년생 벼가 ‘식량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17국에서 다년생 벼를 둘러싼 재배 실험이 진행 중이다.
1960년대 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개량 품종을 내놓아 ‘녹색혁명’을 주도한 IRRI는 2010년대부터는 영양 성분을 많이 함유하도록 쌀의 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골든 라이스(황금쌀·Golden Rice)’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쌀알이 노랗게 보이는 베타카로틴이라는 물질을 함유하도록 개량한 품종이다. 베타카로틴은 인체에 흡수되면서 비타민 A로 전환된다. 일각에서 유전자변형작물(GMO)이라며 거부감을 표시하지만, 비타민 결핍으로 시력을 잃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IRRI는 “전 세계 2억5000만명 정도가 비타민 A 결핍증을 갖고 있고, 매년 50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이 때문에 시력을 잃는다”고 했다.
필리핀 정부는 2021년 골든 라이스의 상업 재배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으며, 최근 필리핀 17개 지역에서 모두 100t을 시범 생산했다. 내년이면 완전한 상업적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 대국이 될 인도에서도 정부 내에서 골든 라이스의 재배를 승인할지를 두고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인도가 골든 라이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쌀 산업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쌀 산업 위협하는 기후변화
재배 기술이 발전하고 품종 개량이 이뤄지고 있지만 근래에 글로벌 쌀 생산은 정체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쌀 생산량은 5억1600만t으로 2021년(5억2440만t)뿐 아니라 2020년(5억1790만t)보다 적었다. 지난해 생산량에 재고를 더한 쌀 공급량은 7억1260만t으로 2021년보다 소폭 줄었는데, 쌀 공급량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최근 10년 사이 처음 있는 일이다. 미 농무부(USDA)는 최근 세계 쌀 경작지 면적도 1억6370만ha로 1년 사이 1.4% 줄어들었을 것으로 봤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쌀 생산을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쌀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1000L가 넘는 물이 필요하지만 세계 각지의 가뭄 탓에 물 부족으로 쌀 수확이 감소했다. 기온 상승도 문제다. 쌀이 기온 상승에 취약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IRRI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쌀 생산량은 10% 줄어든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도 안정적인 쌀 생산을 위협한다. 베트남의 메콩강 삼각지 지역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짠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쌀 농사에 피해를 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쌀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기체 메탄이 발생되는 문제점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농사를 지으면 수면 아래 토양으로 산소 유입이 차단된다. 이때 토양에 메탄을 생성하는 박테리아가 잘 번식하면서 메탄이 공기 중에 배출되는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메탄이 온실효과를 야기하는 정도가 이산화탄소의 80배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메탄 연구의 권위자인 프랑스 베르사유대 마리엘 소누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쌀 재배 과정에서 배출된 세계 메탄가스의 양은 3000만t이며, 그중 3분의 1이 한국·일본·동남아시아에서 발생했다. UNEP는 “2050년까지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쌀 생산에서 배출되는 메탄의 양을 2020년 대비 30%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후변화를 둘러싼 도전도 기술 발전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메탄 발생을 줄이고 가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물을 덜 사용하는 경작법이 연구되고 있다. 농업 분야 연구자들은 벼를 재배하면서 물을 필요할 때만 대고 나머지는 건조한 상태로 바꾸는 농법을 연구 중이다. 호주의 경우 2012~2020년 사이에 물 10만L당 0.85t의 쌀을 생산했는데, 2026년에는 같은 양의 물을 쓰고도 1.5t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트 쌀’로 기장이 각광
쌀이 지구온난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데다, 흰 쌀밥이 당뇨병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아예 쌀을 다른 곡물로 대체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유엔은 올해를 기장(millet)의 해로 선정했다. 기장은 뜨겁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서 ‘기후 스마트 곡물’로 불리기도 한다. 전 세계 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가 기장 재배 확대에 적극적이다. 유엔은 “기장을 먹으면 항산화 성분과 미네랄, 단백질 등을 섭취할 수 있다”며 “또한 섬유질이 풍부해 혈당이나 지방질을 조절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가 기장을 쌀 대체재로 내세웠다면, 쌀 생산량 4위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야자수에서 얻을 수 있는 녹말가루인 ‘사고(sago)’를 많이 먹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고는 같은 재배 면적 기준으로 생산량이 쌀의 8배에 달한다. 사고를 얻을 수 있는 야자수의 80%가 인도네시아에서 자란다. 사고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는 수수, 카사바(cassava) 같은 작물 재배를 독려하고 있다. 주식이 쌀이지만, 식량 안보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대체재를 다수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쌀을 생산하는 여러 국가에서 정부의 쌀 시장 개입을 줄이려는 시도도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정부가 일정 가격으로 쌀을 매입해주는 최저가격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농업 개혁 방안을 2020년 내놓았다. 정부가 매입해주는 물량을 믿고 농민들이 과잉생산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물 부족 현상도 완화하기 위해서다.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반대 시위가 격화되자 모디 총리가 관련 법안을 2021년 폐기했지만 최저가격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 등을 통해서 쌀 생산량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와 함께 농민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 쌀에 관세를 매겨 쌀 가격을 높이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온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의 야마시타 가즈히토 연구원은 “수입 쌀에 관세를 부과하는 바람에 일본인들이 국제 가격의 2~3배를 내고 쌀을 사먹고 있다”며 “높은 쌀 가격은 농민들의 쌀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다른 작물을 재배할 유인을 사라지게 만들어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악영향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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