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AI와 예술의 공조
“이 산업은 예술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 됐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1859년 발표한 평론 ‘근대 대중과 사진’에서 사진이 예술의 품격을 망가트릴 것이라며 날선 공격을 했다. 그는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봤다. 인쇄나 속기가 문학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보들레르의 비난은 사진보단 산업화에 대한 경고였다. 오늘날 그가 예고했던 ‘사진의 침공’은 실현된 셈이니 보들레르 주장이 다 틀린 것만도 아니다.
오래도록 사진이 예술인지 아닌지 의심받았듯이, 현재 예술계에 논쟁을 일으킨 새 기술은 인공지능(AI)이다. 얼마 전에도 세계적인 사진 대회에서 우승한 독일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젠의 작품 ‘전기공’이 알고 보니 AI가 만들어 낸 이미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고의 반전은 엘다크젠이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예술의 경계를 묻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주 미술대회에서 디지털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도 똑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이 선보인 이 작품은 설명문을 입력하면 이미지로 변환시켜주는 미드저니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것이다. 붓질 한 번 없이 그림을 완성한 셈인데, 이 그림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AI 그림들은 이미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2018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세계 최초로 AI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가 경매에 나와 43만2000달러(약 5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AI가 인간적인 예술 창작까지 할 수 있다는 건가. 대중들의 의견은 팽팽히 갈린다. 사진만 봐도 예술이라는 틀 안에 자리잡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예술의 기원이 본래 기술과 하나로 포괄된 ‘테크네(Techne)’였다는 설은 AI와 예술의 공조를 지지한다. 팝아트의 전성기를 연 앤디 워홀이 없었다면 매릴린 먼로의 얼굴을 무수히 복제한 작품은 볼 수 없었을 터이다. “예술은 (고등)사기”라고 했던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도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입씨름도 몇년 후엔 우스워질지 모르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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