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가 각자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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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여러 정치·사회적 혼란에 휘말렸다.
레싱은 서문에서 "두 사람 다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였다"고 썼다.
'모든 것을 종식할 전쟁'이란 1차 세계대전의 별칭이 무색하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번에는 작가의 남동생 해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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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344쪽|1만6000원
격동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여러 정치·사회적 혼란에 휘말렸다. 2007년 88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도 그런 시대를 살았다. 최근 국내 출간된 그의 마지막 작품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자신의 부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격동의 20세기가 펼쳐지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각각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이다. 레싱은 서문에서 “두 사람 다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였다”고 썼다. 아버지 앨프리드는 전장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나무 의족을 달았다. 끔찍했던 경험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나중에는 당뇨병까지 생겨 괴로운 말년을 보냈다.
어머니 에밀리는 간호사로 일하다 부상병이던 앨프리드와 만나 결혼했다. 농부가 꿈이던 앨프리드를 따라 1925년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라 짐바브웨로 갔는데,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강인함으로 가정을 이끌었지만, 못다 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극성과 집착 탓에 오히려 자녀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책은 소설과 회고록을 한 권에 담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제1부는 중편소설이다. 레싱이 만들어 낸 이 가상의 세계에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잠시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각자 짝을 만나 평생 친구로 남는다. 잘생긴 크리켓 선수 앨프리드는 고향 농장에서 일하며 야무진 아내, 쌍둥이 아들들과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
똑똑한 에밀리는 런던에 가서 간호사로 일하다 저명한 의사를 만나 결혼한다.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지만 그가 남긴 유산과 인맥을 활용해 교육 자선사업가가 된다.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은 평화 속에서 번영을 구가한다.
제2부는 회고록이다. 전쟁이 남긴 외적·내적 상처를 끌어안고 아프리카 식민지 농장에서 고군분투했던 가족의 실제 삶을 그린다. 환상에 젖어 식민지로 떠났던 사람들의 좌절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모든 것을 종식할 전쟁’이란 1차 세계대전의 별칭이 무색하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번에는 작가의 남동생 해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레싱이 이 책을 펴낸 건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08년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 그리고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난 부모를 떠올렸다. 소설로나마 그들이 바랐던 삶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런데 왜 중편소설 ‘앨프리드와 에밀리’ 뒤에 ‘앨프리드와 에밀리: 두 인생’이란 회고록을 덧붙였을까.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1부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 2부의 삶이 오로지 비극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대자연은 때로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경이로웠다. 아버지의 고통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레싱은 본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는 아이들과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절대 평탄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야생에 가까운 자연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유년기는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는 레싱도 세상을 떠나고, 격동의 시절도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이 다사다난했던 가족의 삶은 책으로 남아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힘든 가운데서도 소중한 추억은 쌓일 수 있다고.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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