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쫓겨나야 발급해주는 ‘전세피해 확인서’

조희연 2023. 4. 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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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세사기 지원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의 피해지원센터에서 '전세사기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피해자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가 전세사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았거나 경·공매에서 낙찰되지 않은 상태라면 확인서 발급이 불가하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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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종료·경매 낙찰돼야 적용
극단선택 피해자도 해당 안 돼
정부 지원센터들 발급률 저조
서울·인천 센터, 3%도 안 돼

정부의 전세사기 지원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의 피해지원센터에서 ‘전세사기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피해자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 면담요청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20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시가 센터를 개소한 1월31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센터를 방문한 이용자는 832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피해자는 22명으로, 방문자의 2.6%에 그친다. 인천시가 파악한 전세사기 피해자 3008명과 비교하면 0.6% 수준이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서울 센터 또한 발급률이 저조한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28일 개소한 뒤로 이달 12일까지 센터에 방문한 4160명 중 109명(2.6%)만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확인서는 센터가 제공하는 △법률지원 △주거지원 △금융지원 △심리상담 서비스 중 주거지원과 금융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다. 센터를 방문한 피해자 약 97%는 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했고, 실질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셈이다. 전날 인천시가 발표한 금융·비금융 지원 조건도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피해자에 한해서만 제공된다.

피해확인서 발급률이 저조한 이유는 확인서가 ‘벼랑 끝에 있는 피해자’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피해확인서는 피해자가 센터를 찾아 신청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심사를 거쳐 발급되는데,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거나 경·공매 낙찰로 임차권이 소멸되는 등 세입자가 집에서 쫓겨날 상황에 있는 경우만 ‘전세피해자’로 보고 피해확인서를 발급하고 있다. 피해자가 전세사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았거나 경·공매에서 낙찰되지 않은 상태라면 확인서 발급이 불가하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 승강기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센터를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는 “피해자들이 지원정책을 모르고 있다”며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센터에 직접 찾아가더라도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과 17일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또한 경매로 넘어간 집이 낙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피해지원센터에 방문했더라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셈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가장 긴급하게, 어딜 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HUG 관계자도 “실제 피해확인서를 신청할 만한 조건에 있지 않아도, 경매가 들어올 것 같거나 집이 위험하다는 소문만 듣고 불안한 마음에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찾는 분도 많다”며 “다만 경매가 종료되기 전에도 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조건부 확인서를 발급해 피해 발생 시 보다 신속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를 유예하기로 한 20일 시민들이 인천지방법원 경매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정부의 전방위 대책에도 불구하고 경매 일정은 계속됐다. 이날 오전 10시20분 인천지방법원 2층 경매법정에 주안동 모 오피스텔 3세대와 인근 오피스텔 1세대가 매물로 나왔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물건이었다. 해당 오피스텔은 첫 경매에 부쳐져 감정가와 최저 입찰가가 동일한 수준으로 높게 책정된 탓에 유찰됐다. 정부 경매 유예 조치가 시행됐지만, 이들 주택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채권자가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금융사나 채권관리회사(NPL)인 탓으로 추정된다. 피해 주택 상당수 채권은 현재 민간의 금융권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중 은행들의 협조가 필수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희연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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