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돈으로 사나” 공공매입에 선 그은 정부…피해자들 ‘울분’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주택 우선매수권과 대출 기준 완화 등 후속 대책을 추진하면서도 피해자와 야권이 요구해 온 피해 주택 공공매입에 대해서는 재차 난색을 표하며 거리두기에 나선 모양새다. 전세사기 피해 구제 해법을 둘러싼 온도차가 확인되면서 논란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20일 열린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공공매입을 둘러싸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야당 의원들이 설전을 벌였다.
공공매입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피해 주택 매입을 질타했고, 원 장관은 "무슨 돈을 갖고 어느 금액에 사라는 말이냐"며 대립각을 세웠다.
야권에서 주장하는 공공매입 방안에는 공공이 피해 주택을 직접 매입하거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채권 매입을 위해선 입법이 필요하다.
"공공매입, 미국도 한다" VS "자칫하면 피해자 희망고문"
앞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매입기관이 임대차 보증금을 피해자에게 먼저 내준 뒤, 해당 채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담은 특별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심 의원은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경매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 "피해자 중 우선매수권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며 "피해자 상당수는 전세대출을 떠안고 있는데, 여기에 또 대출받아서 집을 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추가 정책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다.
심 의원은 "정부가 싼값에 (피해 주택을) 매입해 주거 임차인들이 (기존 거주지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공의 피해 주택 직접 매입과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 병행을 촉구했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 미국 당국의 정책을 언급하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났을 때 미국이 이런 방식으로 부실 채권을 매입해 전세 세입자들의 주거를 보장해준 사례가 있다"며 "미국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이 거세게 몰아붙이자 원 장관은 "보증금 반환채권도 매입하고, 주택도 매입하라는 것이냐"며 "무슨 돈을 가지고, 어느 금액에요?"라고 반문했다.
원 장관은 "(보증금 반환 채권액을) 할인하면 피해자가 수용하지 않고, 비싸게 사면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우선변제금액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할인해 매입한다면 피해자들이 과연 수용하겠나"며 거듭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별법안에 따르면, 채권매입기관은 인수한 채권을 기초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팔거나,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 채권 매입 비용을 회수하게 된다. 심 의원 법안은 공공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임대보증금의 50% 이상의 가격으로 산정해 매입해주도록 했다.
조오섭 의원은 원 장관 주장을 반박하며 "세금으로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데 (특별법안에 따른 공공매입에는) 세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매입한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원 장관은 물러서지 않고 "선순위 채권액이 최고치로 돼 있어 잔존 가치가 없는 물건의 채권 가격을 과연 얼마로 평가할 수 있느냐"며 "자칫하면 피해자들에 대한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의원은 "채권 평가는 심 의원 법안에는 50%에서 100%, 제 법안에는 적절한 심사 가격이라고 적시돼 있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더 전향적인 방향이 나오길 바란다"고 다시 받아쳤다.
국토위는 다음주께 공공매입 특별법안을 상정해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주 내로 관계부처 협의를 마치고, 다음 주 전세사기 피해대책 세부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이날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절망감을 드러내며 윤석열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는 보여주기식 일방적인 대책 발표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임시 조치에 불과한 경매일시 중지로 시간을 확보한 만큼 그사이에 특별법 제정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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