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이름·사진 전부 암호화” 머스크와 드루킹이 쓴 메신저
‘시그널을 써라(Use Signal).’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1월 한 줄짜리 트윗을 띄웠다. 머스크가 권유한 ‘시그널’은 미국의 온라인 메신저다. 전세계 50여 메신저 가운데 하나를 콕 집어 추천한 것이다. 머스크뿐이 아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시그널로 기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보기관의 추적을 따돌린다고 밝힌 적 있다. 국내에서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댓글 조작에 나선 김경수 의원과 필명 드루킹이 시그널로 55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외에서 비밀스러운 전갈을 주고받은 이들이 시그널을 사용한 건 이유가 있다. 2015년 국제 테러 감시 단체 ‘시테(SITE)’는 세계 메신저 33종의 보안 등급을 매겼는데, 시그널은 ‘가장 안전’ 등급을 받았다. 국내에서 보안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은 시그널보다 한 단계 아래인 ‘안전’ 등급이었고, 카카오톡은 ‘안전하지 않음’ 등급을 받았다.
보안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메신저로 인정받는 시그널의 메러디스 휘터커(41) 대표는 “메신저는 원하는 사람과 편하게 소통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라며 “감시받는다는 두려움이 있고 정보가 새어 나갈 우려가 있으면 소통이 똑바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보안이 훌륭한 메신저가 가장 좋은 메신저”라고 강조했다. 한국 시장을 알고 싶다며 서울을 찾은 그에게 온라인 메신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홍콩 시위, 이란 민주화 운동 때 이용자 급증
작년 9월부터 시그널을 이끌고 있는 휘터커 대표는 “시그널을 사용하면 이용자의 대화 내용이 본사 서버에 남지 않고 개인 단말기에만 저장되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압수 수색 영장을 제시하면, 서버에 저장된 대화 내용을 제출하는 카카오톡 같은 다른 메신저 업체와는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는 얘기다. 2016년 이후 미국 검찰이 시그널에 정보를 다섯 번 요청했다. 그때마다 시그널은 “우리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휘터커 대표는 “우리는 메시지를 회사 차원에서 저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개별 메시지에 암호화 기술을 적용한다”고 했다. 메시지를 보내면 받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키(key)로 암호를 풀어서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휘터커 대표는 “키의 암호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특정인의 키를 누군가 해킹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전 메시지는 풀어낼 수 없어 메시지 내용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암호화 기술은 텔레그램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그널이 보안 수준이 더 높은 건 메시지뿐 아니라 프로필, 이름, 사진, 연락처 정보와 같이 모든 정보를 자동으로 암호화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휘터커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보안 기술이 우수하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시위, 정치적 충돌, 전쟁 등이 일어나면 이용자 숫자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당시 중국의 감시를 피하겠다는 홍콩 젊은이가 대거 시그널을 깔았고, 지난해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이란이나 전쟁이 터진 우크라이나에서도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시그널은 이용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개인 사생활을 보장한다는 기조에 따른다는 원칙 때문이다.
시그널은 이용자에게 기부금을 받아 사업을 이어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2020년 시그널의 한 해 총수입은 1486만달러(약 193억원)였는데, 이 가운데 기부금이 1374만달러(약 178억원)를 차지했다. 비영리단체인 ‘시그널 파운데이션’이 세웠기 때문에 수익 사업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메신저가 광고나 데이터를 활용한 수익 사업을 벌이는 것과 반대다. 휘터커 대표는 “수백만 이용자가 조금씩 기부하는데, 만약 일반 메신저 업체처럼 수익을 중시했다면 보안을 지금처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 뛰어난 메신저가 AI의 정보 수집 막는다”
휘터커 대표는 UC버클리에서 ‘수사학(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전공하고 AI(인공 지능)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웠다. 그는 시그널에 합류하기 전 구글에서 13년 동안 일했는데, 구글 내 AI 관련 연구 부서인 오픈리서치그룹을 창설한 주인공이었다. 그는 2017년에는 뉴욕대 AI연구소인 ‘AI Now’를 공동 설립했고, 2021년에는 미 연방무역위원장의 AI 고문을 맡았다.
휘터커 대표는 AI 시대가 다가올수록 정부나 특정 기업에 의한 감시 사회가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가 구글을 뛰쳐나온 것도 구글이 미 국방부와 비밀 계약을 맺고 드론으로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메이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휘터커 대표는 “AI를 훈련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다 보면 인간을 감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며,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감시당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의 기업 이익을 위한 정보가 될 것”이라며 “그래서 AI 시대가 다가올수록 시그널처럼 보안이 우수한 메신저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했다.
메신저가 은밀한 범죄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에 대해 휘터커 대표는 “50년 전에는 범죄자들은 펜을 사용해 종이에 글을 써서 범죄를 계획했을 텐데, 누구도 범죄자들이 사용한 펜을 만드는 회사에 따지지 않았던 것처럼 범죄 발생 원인을 메신저에 돌리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부각되기 때문에 보안이 뛰어난 메신저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시그널을 이용하는 사람 대다수는 범죄자가 아니라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시그널 이용자는 미미한 편이다. 그럼에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는 이유에 대해 휘터커 대표는 “시그널을 이용하면 사생활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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