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지지율 떨어지면 반복하는 '노조 때리기'에 맞장구 치는 언론
尹지지율 하락 요인 '김건희·외교·불투명성'…대응은 '노조 때리기'
지지율 반등 카드로 꺼낸 '고용세습'…"노동개혁" 포장하는 보도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면 대통령이 어김없이 노조를 비판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노동개혁'으로 포장하는 대통령실 주장을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근 '고용세습'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을 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아차 노사를 입건했다는 17일 한국경제 보도가 계기였다. 이날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 세습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18일 국무회의에선 “아직도 국내 일부 기업의 단체협약은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유지하고 있다”며 “고용세습은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부당한 기득권 세습으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기아차 단체협약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아차 측이 관련 단체협약을 시정하라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사법조치에 나섰다. 이후 기아차 노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이미 올해 1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해당 조항 삭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노사는 이 조항을 근거로 채용된 사례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인 '고용세습'이 있었거나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고용세습'을 비판하고 나선 배경으로는 지지율이 꼽힌다. 14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4월2주차(11~13일) 국정 지지율은 약 5개월 만에 30%선이 무너진 27%로 나타났다. 과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개입 의혹이 높았던 시기(긍정 25%), 문재인 정부의 긍정률 최저치(29%)와 유사한 수준이다. 리얼미터 조사(10~14일)의 경우 5개월 만에 부정평가가 63%까지 올랐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각 조사기관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도 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되려 할 때마다 노조 비판에 힘을 줬다. 그러나 실제 지지율을 깎은 요인들은 따로 있었다.
尹지지율 하락 요인 '김건희·외교·불투명성'…대응은 '노조 때리기'
국정 지지율 보도에 주로 인용되는 한국갤럽,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공통적인 지지율 하락 기점은 지난해 6월 말, 8월 초, 9월 말, 올해 3월 첫주와 4월 첫주로 모인다. 첫 번째 시기는 지난해 6월 29~30일 나토(NATO) 순방에서의 외교결례 및 김건희 여사 비선 동행 의혹이 일었을 때다. 취임 직후 50%에 가까웠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7월 들어선 부정평가에 역전됐다.
8월엔 1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인터뷰로 촉발된 취학연령 하향조정 논란과 8일 박 부총리 사퇴,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재조사 결과 논란 등이 이어진 끝에 부정 평가가 60%대 후반에 달했다. 여기에 9월22일 뉴욕 순방 당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여권의 MBC 탄압 사태가 지지율을 한 번 더 끌어내렸다. 한국갤럽 20%, 리얼미터 30% 안팎의 지지율이 장기화한 11월,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적인 폭력”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끝낸 12월이 지나면서는 지지율이 완만하게 오르는 듯했지만 이내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2월 윤 대통령이 '건폭'(건설 현장 폭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건설노조를 비판했다. 이후 한국갤럽 30% 중반, 리얼미터 40% 안팎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지난달 16~17일 한일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달 8일 미국발 도감청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투명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면서 4월 2주차 지지율이 최저치 가깝게 내려 앉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윤 대통령이 두 달 만에 '고용세습' 키워드를 꺼내든 것이다.
지지율 반등 카드로 꺼낸 '고용세습'…“노동개혁” 포장하는 보도
다수 언론도 윤 대통령의 고용세습 척결론을 지지율과 연관해 해석하고 있다. 동시에 이를 '노동개혁'으로 표현하는 보도들도 잇따랐다. 일례로 머니투데이는 17일 “윤 대통령이 노조회계 투명화 등에 이어 고용세습에 본격적인 칼날을 대고 있다. 최근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특유의 '윤석열다움'으로 정세를 돌파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고 썼다.
한국경제 <'노동 개혁' 강조한 尹 대통령 “고용세습 뿌리 뽑아야”>, 뉴스1 <대통령실, 지지율 하락 국면에…노동개혁·엑스포 힘주기>, 국민일보 <노동개혁 다시 꺼낸 尹 “고용세습 뿌리뽑아야”>, 국제신문 <다시 노동개혁 꺼내든 尹, 지지율 하락 국면 돌파> 등을 비롯한 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언행이 '노동개혁'으로 묶였다.
반면 윤 대통령 주장의 사실관계를 판단한 보도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윤석열' '고용세습' '노동개혁'으로 검색된 17~18일 보도는 50건, 이 가운데 실제 고용세습 사례가 없다고 설명한 기사는 한 건도 없다. “산업현장에서 고용 세습을 없애는 일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폭력 행위 엄단 등과 함께 윤 대통령이 표방하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는 설명 뿐이다. 대통령 발언을 그대로 전하거나 대통령실 입장을 부연하는 관행으로 작성된 기사들이 대통령실 홍보 창구처럼 활용된 것이다.
기아차 단체협약 조항이 사문화됐다는 반론이 담긴 기사를 찾기 위해 '윤석열' '고용세습' '사문화' 키워드로 추출한 기사는 이틀간 5건(MBC·YTN·조선일보·한겨레)에 불과했다.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20일 “언론이 부도덕한 사건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프레이밍'을 키우는 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 이면에는 한국의 모든 언론사가 광고에 휘둘리는 지형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노조가 곧 부패세력이라고 선동을 하려는 미디어와 정치권이 같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이어 “지난 보수 정부에서 빠짐없이 등장한 게 '노동개혁'이라는 정부 의제”라며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꺼낸 와중에 나온 것이 주69시간제였다. 고용노동부는 곧 임금체계 개편안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하반기까지 제도 정비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취약계층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고임금자를 끌어내리는 방향”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MZ노조'로 띄웠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마저 정부정책에 반대 입장을 세우고 있다”며 “본질적 문제는 보지 못하고 '악선동'에만 매진하다 역풍을 맞는 상황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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