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7.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손톱만 한 카메라가 무려 다섯 개가 있다. 카메라가 휴대폰에 장착되면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은 카메라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앞으로 카메라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찾았다.
■ 200년에 걸친 카메라의 발달사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한국카메라박물관(관장 김종세)이 있다. 2000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개관했던 것을 2007년 현 위치에 건물을 신축해 이전한 것이다. 박물관은 카메라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관은 렌즈의 단면으로 디자인하고 건물 상부는 조리개 모양과 후드가 조화를 이룬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인간의 꿈과 집념의 역사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독일제 ‘콘탁스’와 ‘라이카’의 시대였다. 그러나 1959년 ‘일본광학’에서 카메라 역사의 기념비적 모델이 된 ‘니콘 F’를 출시하면서 카메라 시장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다. 이후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카메라를 탄생시킨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한국은 카메라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의 극적인 변천사를 실물로 확인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층별로 3개 전시실이 있다. 1층 1전시실은 카메라와 렌즈, 부속 기자재들을 테마와 이야기를 담아 주제별로 기획 전시하는 공간이다.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카메라가 최초로 등장한 1839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카메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카메라를 전시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유물로 가득하다. 지하는 교육과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우리 박물관에는 카메라와 렌즈가 각각 7천여점, 옛날 유리 원판 필름과 각종 부속품, 기자재까지 소장품은 모두 2만5천점에 이릅니다. 100년이 넘은 카메라를 많이 소장하고 있지요. 사립박물관으로는 우리 박물관이 세계 최고라 자신합니다.”
김 관장의 소개말에 긍지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카메라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에서 카메라의 시조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마주한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한쪽 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반대쪽 벽에 구멍 밖 풍경을 거꾸로 나타내는 원리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는 183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전시된 유물은 1890년 무렵 독일에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이란다. 카메라 루시다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유물이다. 1826년 무렵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했으니 대략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0년의 세월 동안 변신을 거듭하면서 휴대용 카메라와 스냅사진이 등장한다. 플라스틱 롤필름을 발명하면서 사진기는 휴대하기 좋도록 작고 가벼워진다. 디지털카메라의 발명은 카메라 역사의 최대 혁명이다. 카메라의 필수품이던 필름이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카메라가 휴대폰에 장착되면서 또 한 번의 혁명이 이루어진다.
■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
콘탁스Ⅱ 라이플은 특별한 생김새만큼이나 얽힌 사연도 풍성하다. 관람객들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도록 둥근 유리관에 전시했다. “총의 개머리판 위에 장착된 카메라를 방아쇠를 당겨 셔터가 동작되도록 만들었지요. 히틀러 나치 정부의 주문으로 단 4대가 제작되었으나 한 대는 사라져 현재 3대 만 남았는데, 실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우리 박물관에서만 가능합니다.” 제작한 해가 1936년이다. 베를린올림픽 동영상 촬영 때 쓰였던 카메라를 어떻게 구했을까. “20년 전쯤 독일 컬렉터에게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절대로 되팔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쓰고 소장한 귀중한 물건입니다.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같이 전시되어 이 특별한 카메라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소장품은 무엇일까?
“목재로 만든 1907년 모델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샀는데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물건보다 더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습니다.” 카메라의 원조인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루시다부터 최초의 은판 사진술 카메라인 1839년 모델, 최신 디지털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카메라들이 마주하면서 “인간의 눈”에 다가가려는 기술 발전의 종착점을 상상한다. 라이카, 니콘, 펜탁스 등 세계 카메라 제조사에도 없는 초기 모델까지 살펴볼 수 있음에 감탄하며 설립자의 이력을 살펴본다.
■ 카메라를 향한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설립자 김종세 관장의 헌신과 열정의 산물이다. 젊은 날 광고와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면서 카메라에 빠져 카메라 수집에 열을 올렸다는 김 관장은 1976년에 구입한 ‘아사히 펜탁스 K2’와 인연을 맺으면서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사히 펜탁스 K2하고 독일제 자이스 이콘에서 생산한 콘타플렉스를 비교하면서 카메라 렌즈를 모으기 시작한 그는 박물관 설립을 마음먹은 1993년부터는 돈이 생기면 카메라를 사서 렌즈를 테스트하고,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카메라를 구입한다. 물론 카메라 발전사에 기여했거나 희소성이 있는 것들이다.
영국에서 희소성이 있고 상태가 좋은 카메라들을 많이 만난다. 소련이 붕괴한 직후 러시아와 동유럽의 길거리에서 명품들을 많이 산다. 1997년 IMF 때 일본 사람들이 와서 좋은 카메라를 싹 다 걷어가는 것을 보고 일본으로 나가려는 카메라를 모두 사 들인다. 물건 양이 많아서 나중에는 돈 빌려 가면서 구매한다. 1998년부터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을 드나든다. 카메라를 수집하기 위해 다닌 나라가 120여개국이나 된다고 하니 그가 이제까지 쏟은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카메라를 교환하는 일은 있었지만, 팔아서 돈을 만든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의 이런 투철한 자세가 우리나라 최초로 카메라 전문박물관을 개관할 수 있었던 힘이다.
지하에 있는 제3전시실은 사진 전시, 스튜디오, 암실 등 다목적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카메라’ 교육과 같은 문화강좌, 카메라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만들어 보는 체험, 카메라의 원리, 사용법, 촬영방법들을 간단하게 배운 뒤 촬영한 필름을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작업을 해보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의 호응이 아주 좋아 놀라고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가장 즐겁고 보람된 일이죠.” 카메라의 원리가 궁금해 하는 관람객들을 위해 박물관은 카메라 옵스큐라, 바늘구멍 카메라 만들기 체험을 통해 카메라의 원리를 전달한다. 박물관에서 제작한 바늘구멍 카메라는 2천300여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살려야 한다
매년 특별전을 열고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그동안 라이카 카메라 특별전, 펜탁스 카메라 특별전, 옛날 카메라로 찍은 사진전, 입체카메라 특별전, 군용카메라 특별전, Rolleiflex & 세계 이안반사식 카메라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현재 ‘120년 역사, 세계 접이식 소형 카메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하 전시실에는 현재 김종세 작가의 다랑이논을 주제로 한 사진전 ‘가방제전/묘족 이천년의 혼’이 열리고 있다.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세계가 인정하는 명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박물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박물관 전체 토지가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허물고 주택을 건설한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누가 내렸을까. 국가는 당연히 박물관을 보호해야 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13조 2항에 ‘국가나 지자체 장이 지원 육성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권산 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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